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5~7일 진행된 노동당 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對)조선 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며 “최대의 주적(主敵)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이는 조 바이든 차기 미 대통령을 향한 북의 첫 직접적 메시지다. ‘핵강국 건설’ 목표에 매진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향후 주도적 위치에서 미·북 협상에 나서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은 “새로운 조·미(북미) 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며 “강대강(强對强), 선대선(善對善)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했다. 미 측의 태도 변화만큼 대응하겠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언급한 적대정책 철회는 체제 안전 보장과 대북 제재 완화,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을 뜻한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이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자제해온 만큼 ‘미국이 먼저 상응하는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트럼프·바이든 행정부 모두 북한의 선(先)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은 핵 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활공 비행 탄두, 수중 및 지상 고체연료 ICBM 등 신무기 개발이 임박했음을 공식화했다. 미국을 겨냥한 전략 무기이자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들이다. 특히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 단계에 있다”고 밝힌 핵잠수함의 경우 건조되면 미국의 대(對)잠수함 전력에 탐지되지 않고 미 본토 근처까지 잠항(潛航)한 뒤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어 기습적인 미 본토 타격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또 마하 5 이상의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무기는 사드 등 기존 무기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
다만 김정은은 이번 보고에서 미국을 향한 직접적이거나 도발적인 언사는 자제했다. 향후 외교를 위한 공간은 열어두겠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과거에는 미 행정부 교체기 때마다 핵실험 같은 도발을 반복했다.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미국이 내부 문제로 바로 북한 문제에 신경 쓸 여력이 없고, 바이든의 대북 정책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도 당분간 상황을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