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보다 발전시키라”며 전술핵무기 개발을 지시했다고 북한 관영 매체들이 9일 보도했다. 전술핵은 사거리가 짧아 북이 개발할 경우 사용 대상은 한국·일본 정도로 국한된다. 김정은이 전술핵 개발을 공개적으로 지시한 건 처음이다.

김정은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국가 핵무력 건설 대업을 완성하는 것은 반드시 선차적으로 점령해야 할 전략적 고지”라고 했다. 이어 ‘초대형 수소탄’, 화성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완전 무결한 핵 방패”에 빗대며 “후대들 앞에 세운 가장 의의 있는 민족사적 공적”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그동안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지만, 김정은은 이날 ‘핵'을 최소 36차례 언급하면서 ‘비핵화’는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김정은은 특히 “당중앙은 역사적인 2017년 11월 대사변(화성 15형 발사) 이후에도 핵무력 고도화를 위한 투쟁을 멈춤 없이 줄기차게 영도하여 거대하고도 새로운 승리를 쟁취했다”고 했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한·미와 연쇄 정상회담에 나서는 등 대대적 평화 공세를 펴던 기간에도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김정은의 비핵화 쇼는 사기극이었고 정부는 속거나 동조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신년사를 생략한 김정은이 당대회 보고를 통해 긍정적인 대남 메시지를 낼 것으로 기대해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북남 관계의 현 실태는 (2018년) 판문점 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며 방역·인도주의 협력, 개별 관광 등 정부의 대북 제안들을 “비본질적 문제”로 일축했다. 전술핵 외에 군사 정찰 위성 운용과 무인 정찰기 개발 등 대남 군사력 증강을 지시한 김정은은 한국의 첨단 무기 도입에 대해선 “북남 합의 이행에 역행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했다.

특히 북한은 헌법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며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군사적 위협을 제압한다’는 문구를 삽입했다.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여차하면 무력 적화통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했다.

北이 전술핵 탑재한 미사일·방사포 섞어 쏘면 우리軍 속수무책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 8차대회 보고에서 전술핵무기 개발을 이례적으로 여러 차례 공식 언급했다. 그동안 ‘대미(對美)용’이라고 선전해왔던 핵무기를 남한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전술핵무기는 수 킬로톤(㏏·1㏏은 TNT 폭약 1000t 위력)에서 수십 킬로톤의 위력을 갖고 있다. 우리를 주로 겨냥한 사거리 400~600㎞ 안팎의 신형 전술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직경 600㎜) 등에 탑재할 수 있다. 북한이 핵탄두와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이 무기들을 섞어서 쏠 경우 핵탄두와 비(非)핵탄두 구별이나 요격이 사실상 불가능해 우리에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핵무기의 소형 경량화, 전술 무기화를 보다 발전시켜 현대전에서 작전 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하고… “라고 했다. 북한이 그동안 전술핵무기 개발 성공을 암시한 적은 있지만, 김정은 육성(肉聲)으로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김정은은 또 “역사적인 2017년 11월 대사변(화성-15형 발사) 이후에도 핵무력 고도화를 위한 투쟁을 멈춤 없이 줄기차게 영도하여 거대하고도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였다”고 했다. 김정은은 스스로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미국과 비핵화 회담을 진행하는 중에도 핵개발을 해왔다고 인정한 것이다.

북한은 ‘첨단 전술핵무기’라며 초대형 방사포와 신형 전술미사일, 중장거리 순항미사일 등을 언급했다. 이 중 중장거리 순항미사일 개발은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북한이 이 무기들에 핵탄두를 장착할 능력을 확보했는지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우선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널리 알려진 신형 전술미사일은 사거리 600㎞ 이상으로 남한 전역과 일부 주일미군 기지를 사정권에 넣고 있다. 2019년 이후 여러 차례 시험 발사를 실시했고, 지난해 10월 열병식에 등장해 실전 배치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미사일의 탄두 중량은 500~600㎏, 직경은 92㎝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2017년 6차 핵실험에 앞서 공개한 핵탄두는 직경 60~70㎝, 무게 500㎏ 안팎으로 추정돼 북한 신형 전술미사일엔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북한판 에이태킴스’로 불리는 신형 미사일과 600㎜ 초대형 방사포의 경우 탄두 직경과 무게 등을 감안하면 북한이 아직 이 무기들에 장착할 전술핵탄두는 개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군 소식통은 “북한은 아직 핵탄두를 무게 300㎏, 직경 60㎝ 이하로는 제작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군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를 조기 탐지, 30분 내에 무력화하는 ‘킬 체인’(전략표적 타격)과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 KAMD(미사일 방어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신형 전술미사일 및 초대형 이동식 방사포 발사대를 수십기 이상 양산해 배치할 경우 이들을 단시간 내 탐지, 파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또 동시에 수십 발이 날아올 경우 기존 패트리엇 PAC-3 미사일과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통한 요격도 어렵다. 특히 북한 신형 전술미사일은 요격을 피할 수 있는 변칙 기동이 가능하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전술핵을 실천 배치하면 한국 군 재래식 무기의 질적 우위도 사실상 소멸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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