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월 초순’에 열겠다고 예고한 노동당 제8차 대회가 지난 5일 평양에서 개최됐다고 북한 관영 매체들이 6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 기간이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며 “쓰라린 교훈”이라고 했다. 작년 8월 당중앙위 전원회의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 실패를 공식화한 것이다.

김정은은 “최악 중의 최악으로 계속된 난국” “사상 초유의 보건 위기” “겹쌓인 곤란”을 잇따라 언급하며 경제 실패를 제재·코로나·수해 등의 외부 요인 탓으로 돌렸다. 김정은이 실패로 규정한 ‘5개년 전략’은 5년 전 7차 당대회 때 채택한 것으로 북한은 이를 ‘휘황한 설계도’라 선전해 왔다.

대북 소식통은 “당대회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로 ‘승리자의 대회’로 띄워야 한다”며 “무오류의 화신인 수령이 실패를 자인한 것은 평양의 권부 핵심까지 동요할 만큼 경제난을 실감한다는 얘기”라고 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작년 11월 국회 정보위원회에 “북한이 물가는 폭등하고 환율은 급락하는 초유의 경제난에 직면했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현재 북한은 제재로 인한 만성 경제난 속에 코로나 사태로 교역의 90%를 차지하던 북·중 무역을 포기하고 국경을 걸어 잠근 상태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작년 10월 북한의 대중 수출은 140만달러로 전년보다 91.5% 줄었고, 대중 수입은 30만달러로 99.9% 감소했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통치 자금 부족을 호소할 정도로 외화난이 심각하다”고 했다. 실제 김정은은 개회사에서 “당 재정 사업의 개선 대책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간신히 버티던 지방 경제도 작년 여름철 풍수해로 난타당했다. 김정은이 여러 차례 현장을 찾아 공기 단축을 독려했던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와 평양종합병원 건설 사업은 완공 목표일(작년 10월 당 창건 기념일)을 이미 세 달 넘겼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김정은은 “전진을 방해·저해하는 도전은 내부에도 존재한다”며 “결함들을 인정하고 폐단이 반복되지 않게 단호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대규모 인적 쇄신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현존하는 첩첩난관을 가장 확실하게, 가장 빨리 돌파하는 묘술은 바로 우리 자체의 힘, 주체적 역량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데 있다”고 말해 자력 갱생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김정은은 개회사에서 “당원 동지들과 온 나라 인민들, 인민 군 장병들에게 뜨거운 감사와 전투적 인사를 드린다. 총련을 비롯한 해외 동포 조직들과 모든 해외 동포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낸다”고 했다. 주요 인사말에 의례적으로 들어가는 대내·대남·해외 메시지 가운데 ‘남조선 인민들에 대한 인사’만 뺀 것이다. 정부는 그 배경을 분석 중이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당대회에서 김정은의 우호적 대남 메시지를 기대해온 정부로선 불길한 징조”라고 했다. 다만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당중앙위원회 사업 총화 보고에서 ‘조국 통일과 대외 관계 진전을 위한 문제’를 언급했다고 전했다. 구체적 내용은 7일 공개된다.

김정은은 개회사에서 핵·미사일 등 전략 무기 개발 성과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출범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대회가 시작된 평양 4·25 문화회관에는 각급 당대표 5000명과 방청객 2000명 등 7000명이 집결했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16년 7차 당대회(5054명) 때보다 약 2000명 늘었다. 코로나 방역 단계가 ‘초특급’으로 격상된 가운데 최고 지도자까지 참석했지만 ‘거리 두기’는 없었고, 마스크를 쓴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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