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거슈먼 미국민주주의기금(NED) 회장은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전체주의 독재자를 달래는 대북전단금지법은 한반도에 평화·화해가 아닌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자신의 발언을 잘못 인용한 것에 대해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칼 거슈먼 미국민주주의기금(NED) 회장. /NED
 
칼 거슈먼 미국민주주의기금(NED) 회장. /NED

앞서 통일부는 주한 외교단과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배포한 대북 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설명 자료에 거슈먼 회장이 지난 6월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대북 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이에 대해 거슈먼 회장은 “통일부가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의 발언을 잘못 인용했다”고 했다. 그는 “나는 북한 인권 단체를 수사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은 대북 전단이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와 정보 차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해 자신의 발언을 아전인수식으로 끼워넣은 것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다. 거슈먼 회장은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에서도 “전단 살포 단체에 기금을 지원하진 않지만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거슈먼 회장은 지난 22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가 임박한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해 “국제 사회의 비판에 동의한다”며 “이번 법안이 북한 주민들이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을 끼칠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고 했다. 그는 북한인권 이슈를 제기하면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여권(與圈)의 시각에 대해 “독재자는 언제나 인권 문제 제기가 불편한 법”이라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 내 인권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도 아무런 문제 없이 군축 협상을 이끌었다”고 했다.

거슈먼 회장은 “주민들이 정확하고 빠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북한’만이 평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남북 간 화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양심’이라 불리는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을 인용하며 “정보의 흐름이 차단된 세상은 치명적인 위험(mortal danger)이고 한반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거슈먼 회장이 36년째 이끌고 있는 NED는 1983년 미 의회가 설립한 비영리 독립 단체로, 북한 인권 증진에 힘쓰는 활동가와 시민단체들을 왕성하게 후원해왔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약 1100만달러(약 121억원)를 제공했다. 대북 정보 유입에 대한 지원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거슈먼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닫혀있는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권을 위해 힘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미 의회가 21일(현지 시각) 의결한 연방정부 예산에는 북한 인권 증진과 정보 유입 활동 관련 내용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내 인권 증진 활동에 500만달러, 탈북민 보호를 포함하는 국무부 ‘이주와 난민 프로그램’에 34억3200만달러, 미국의 소리(VOA) 같은 국제 방송 운용 예산에 7억900만달러가 책정됐다.

거슈먼 회장은 “인권과 민주적 가치를 위해 힘쓰는 일은 공화당·민주당 할 것 없는 초당적인 미국의 가치”라고 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은 민주 동맹으로서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와 차기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에서 평화와 인권을 동시에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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