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선 대북전단금지법이 의결됐다. /고운호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선 대북전단금지법이 의결됐다. /고운호 기자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국내를 넘어 미국·영국을 비롯한 자유민주 진영 전반으로 급속 확산 중인 가운데 미 국무부가 22일 오전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을 증대하는 것은 미국의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이 법이 대북 정보 유입 활동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란 미 조야(朝野)의 경고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전단금지법 반대’ 입장을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이 법을 의결한 직후였다. 통일부가 주한 외교 공관 50여 곳에 설명 자료를 보내 이 법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등 정부·여당의 ‘전단금지법 마이웨이'는 이날도 이어졌다.

정부는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오전 10시 40분 무렵 대북전단금지법을 심의·의결했다. 정 총리는 이 법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게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는 만큼 관련 단체들과 긴밀히 소통하라”고 했다. 이 장관은 “법 시행 전까지 ‘전단 등 살포 규정 해석 지침’을 제정해 법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법은 공포되는 날로부터 3개월 뒤 발효된다.

정부·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 지키기 총력전
정부·여당의 대북전단금지법 지키기 총력전

미 국무부의 입장이 공개된 것은 오전 11시 20분이었다.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대북전단금지법에 관한 국무부 입장을 묻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의 질문에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을 증대하는 것은 미국의 우선순위 사안”이라며 “북한 주민들이 정권에 의해 통제된 정보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까진 같은 질문에 “따로 언급할 것이 없다”고만 하다가 국무회의 의결이 이뤄진 날 반대의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이 법을 상임위(2일)→법사위(8일)→본회의(14일)에서 연달아 밀어붙이자 크리스 스미스(공화), 마이클 매카울(공화), 제럴드 코널리(민주) 등 미 하원 의원들은 “민주주의 원칙과 인권을 훼손하는 어리석은 입법”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 전 수정안을 강구해달라”고 요청했다. 데이비드 올턴 영국 상원 의원도 ‘한국 정부가 이 법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논란은 갈수록 증폭되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국제사회의 우려·경고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연일 여론전에 매달리고 있다. 민주당 소속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이날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미 측의 우려는) 대한민국의 민주적 절차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0일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고 발끈한 데 이어 전날엔 이낙연 대표가 이 법에 찬성하는 접경 지역 주민들을 국회로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주민 대표들 가운데는 2년 전 민주당 소속으로 군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인사도 있었다.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이 법에 대한 설명 자료를 지난주 주한 외교 공관 50여 곳에 보냈다고 이날 밝혔다. 자료엔 “탈북자들조차 전단 살포가 북한 주민에게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전단 살포가 북한 인권을 개선한다는 증거는 없다” “이 법은 ‘김여정 하명법’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전단금지법에 찬성하는 접경 지역 주민들의 입장문’이란 자료도 수시로 배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권 상식에 반하는 정부·여당의 대응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뉴욕주 검사 출신의 원재천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을 중시하고, 대북 전단도 이를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전단금지법에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전단금지법 강행 처리는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노력에 반한다”고 했다. 이날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민주화위원회,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등 시민단체 27곳은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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