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부부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연합뉴스
 
김여정 부부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연합뉴스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저격’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담화는 지난 6월 4일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대남 협박성 담화를 발표한 지 6개월 만에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북한 권력 2인자로 평가되는 김여정이 한국 외교장관의 발언에 직접 대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이 미국 민주당 조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 후 미국에 대한 비난은 극도로 자제하는 가운데 대남 비난을 재개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에서 김여정(왼쪽)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KBS화면 캡처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에서 김여정(왼쪽)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KBS화면 캡처

이날 김여정은 강 장관이 지난 5일 바레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코로나19으로 인한 도전이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발언한 것을 트집 잡았다. “주제넘는 평” “망언”이라며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정확히 계산되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방역에 사활을 거는 김정은과 방역사령관 역할을 맡은 김여정의 노력을 강 장관이 깎아내렸다고 받아들인 모습이다.

북한은 경제가 망가지는 상황을 감수하면서 코로나 방역에 체제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고강도 대북 제재 속 유일한 ‘경제 젖줄’인 중국과의 교역 중단을 불사하며 국경을 완전 봉쇄하는 등 코로나 유입·확산을 막기 위해 과도할 수준의 방역 정책을 쓰고 있다. 북한이 코로나 방역을 ‘국정 1순위'로 다룬다는 것은 김정은이 올해에만 코로나 방역을 주요 의제로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9차례 주재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김정은은 지난 10월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선 ‘확진자’가 없다고 공개 선언하기도 했다. 북한으로선 강 장관이 이같은 자신들의 노력을 무시·조롱했다고 여길 수 있는 셈이다.

 

다만 김여정의 이날 담화는 지난 6월 담화와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비난의 수위는 낮은 편이다. 6월 담화는 북한 전(全)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에 게재됐지만,이번 담화는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보도됐다. 또 6월 담화는 “주인(한국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라며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협박과 비난을 쏟아냈지만 이번 담화는 강 장관 발언만 거론했다.

전문가들은 김여정 담화가 방한 중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강 장관이 만나기로 한 날 발표됐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비건 부장관은 미 정권교체기 한반도 상황 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여정 담화는) 미국 정권교체기에 북한 문제에 대해 한미 양측이 북한을 자극하거나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미국 편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놓고 불안함이 큰 상황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북에 유리한 대외환경 조성을 위해 분발하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 보고에 따르면, 북한은 해외 공관에 ‘미국을 자극하는 대응을 하지 말라’ ‘극도로 발언에 신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달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고위 탈북자 A씨는 “미국에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만만한 남조선에 대해서만 화를 내며 기선잡기에 나선 모습”이라고 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0월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을 두고도 ‘미국산 삽살개’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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