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18일 KBS 뉴스9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KBS화면 캡처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18일 KBS 뉴스9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KBS화면 캡처

코로나 백신을 북한에 지원하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치열한 ‘백신 외교’ 각축전 속에 우리 정부가 확보한 물량이 전무한데도 성급하게 북한 지원부터 거론한 탓이다. 당장 북한은 외부 지원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고, 국내 각계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KBS 뉴스9에 출연해 “만약 남북이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을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북한으로서는 코로나 방역 체계로 인해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했던 부분들로부터 좀 벗어나는 이런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백신이) 좀 부족하더라도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백신 대북 지원을 제안했다.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있지만, 공식 확보한 물량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하반기 접종 시작을 목표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수급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이 장관의 발언이 또 다른 논란을 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경우 임상 3상에 들어간 코로나 백신을 최근 넉 달간 3억병 이상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의 발언 이튿날인 19일 북한 노동신문은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는가, 아니면 버텨 견디면서 자식들을 살리겠는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 앞에 서 있다”며 “조국 수호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지 못한다면 조국과 인민의 운명이 무서운 병마에 농락당하게 된다”고 했다. 보도 시점상 이 장관의 백신 지원 제안을 걷어찬 것으로 해석되는 반응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북한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라고 했다. 방역 역량이 열악한 북한은 외부 물자 반입을 통한 코로나 확산 가능성을 크게 우려해왔기 때문이다. 대중 무역 급감으로 경제난이 악화하는데도 북·중 국경을 1년 내내 닫아놓고 있을 정도다. 정부가 올해 초부터 북한에 코로나 방역과 수해 복구와 관련해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북한이 불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정치국 회의에서 내린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허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인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에선 이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남북 관계 현실과 북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했다. 장진영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서울 동작갑)은 페이스북에서 “코로나 백신 확보 실적이 일본 대 한국이 3억 대 0인데, 이 와중에 북한 걱정만 하고 있으니 우리 국민은 누가 (걱정)하냐”고 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가수 현철의 노래(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가사가 떠오른다”고 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이인영 (전대협) 초대 의장 동지께서는 북한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오매불망 ‘확보도 못한 백신’을 상납할 생각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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