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10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 만나 일본 징용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논의했다. 박 원장은 이 자리에서 내년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 때 남북 및 미·일 정상이 만나 북핵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의 해법을 논의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장은 면담 후 “문 대통령의 한·일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전달했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강제 징용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나 유감 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가 총리는 “건전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계기를 한국 측에서 만들어달라”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박 원장이 내년 도쿄올림픽을 남북, 한·일 관계 개선의 모멘텀으로 삼자는 구상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도쿄올림픽 기간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도쿄로 초청해 남북·미·일 정상 회담을 하는 방안을 타진했다는 것이다.

日총리관저서 25분 면담… “분위기 좋았다”

박지원 국정원장이 10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구상’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일 간 현안인 징용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그리고 북핵 등 동북아 안보 현안을 일괄 타결하자는 것이다.

박지원 국정원장, 스가 총리
박지원 국정원장, 스가 총리

이날 면담은 오후 3시 40분부터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25분간 진행됐다. 박 원장은 스가 총리에게 일본 측에서 관심을 갖는 납치 문제의 완전 해결과 북한이 참가하는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국이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스가 총리는 납치 문제의 해결과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 협력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박 원장은 회담 후 “스가 총리가 매우 친절하게 좋은 설명을 많이 해줬다”며 “스가 총리의 책을 번역해 읽었다고 말하니 책에 사인해줬는데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스가 총리가 박 원장 설명을 경청하는 등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도쿄올림픽을 남북 및 한·일, 미·북 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겠다는 구상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도쿄올림픽을 한반도 평화 촉진의 장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 한·일 관계 개선과 교류를 촉진하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로 부임하는 노태강 신임 대사에게 신임장을 주면서 “도쿄올림픽 남북 동반 입장, 2032년 남북 올림픽 공동 개최 등을 잘 협의하여 올림픽이 세계 평화의 대제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길 노력해 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런 구상이 미국 차기 행정부의 공감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과 달리 북핵 문제의 다자적 해결과 한·미·일 삼각 동맹을 중시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일본 방문 등 남⋅북·미·일 간 다자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는 물론 한·미·일 삼각 협력의 모멘텀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박 원장이 일본 정부가 납치자 문제 해결과 북·일 관계 정상화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남북 채널을 통해 돕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스가 총리는 취임 후 “납치 문제는 정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조건 없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이 북·일 관계에서도 ‘중재자’ 역할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강제 징용 판결 문제다.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과 이에 맞선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로 경색된 한·일 관계는 아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면담에서도 스가 총리는 “(징용 배상 문제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려 가는 계기를 한국 측에서 만들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양국 정상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에 계속 대화를 하면 잘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12일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을 이끌고 방일하는 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 등을 통해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을 통한 일괄 타결’을 제안했다. 김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교류 협력 분위기를 조성해 양 정상의 정치적 결단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야, 국정원 명칭 유지 합의

한편, 당정청이 대외안보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잠정 결정했던 국가정보원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이날 결론이 났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국정원법 개정안을 논의한 끝에 국정원 명칭을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당정청은 국정원 활동 반경을 ‘대외정보’로 한정하겠다는 의미에서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을 바꾸겠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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