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16일 오후 2시 50분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과 주변에서 강력한 폭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치솟는 모습이 우리 군 감시 장비에 관측됐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2시간 뒤인 오후 4시 50분쯤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요란한 폭음과 함께 비참하게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정부가 "24시간 365일 남북 소통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전해온 대북 정책의 상징물이 폐허로 변한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개성공단 내에 문을 열었다. 2005년 80억원 들여 지은 남북교류협력사무소 건물에 97억원을 추가로 들여 리모델링했다. 이것을 북한이 1년 9개월 만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지난 2018년 9월 14일 북한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우리 측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양측 관계자들이 '공동련락사무소'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641일만에 파괴된 '평화' - 지난 2018년 9월 14일 북한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우리 측 조명균 당시 통일부 장관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등 양측 관계자들이 '공동련락사무소'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이 사무소는 이로부터 641일 만에 북한 당국에 의해 폭파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연락사무소 폭파 방식과 관련, 군 관계자는 이날 "폭파 당시 대포가 목격되지 않았다"며 "북한군이 건물 안팎에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폭발로 연락사무소 건물 상단은 완전히 폭파돼 복원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폭발음은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 등 우리 지역에서도 들릴 정도였고, 검은 연기가 치솟는 모습은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도 관측됐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강원도 철원·고성 등 비무장지대(DMZ) 인근 접경 지역의 불안감이 고조됐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군 관측 장비로 촬영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장면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4층짜리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약 3초 만에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이 담겼다. 연락사무소 옆에 있는 15층짜리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외벽이 크게 파괴되는 장면도 포착됐다. 종합지원센터는 개성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2007년 8월 착공해 2010년에 개장했다. 정부 예산 530억원이 투입됐다. 이 때문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사실상 개성공업지구를 통째로 폭파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공동연락사무소는 부지만 북한 소유고, 우리 예산으로 지은 건물은 엄연한 남측 자산"이라며 "북한이 이를 폭파한 것은 4·27 판문점 선언뿐만 아니라 과거 남북 합의들을 모두 위반한 행위"라고 했다. 남북이 2000년 체결한 '투자보장에 관한 합의서'는 '남과 북이 자기 지역 안에서 법령에 따라 상대방 투자자의 투자자산을 보호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현실성은 낮지만 북측에 나중에라도 '일방적 파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따질 근거는 있는 셈이다. 개성공업지구법에도 비슷한 조항이 들어 있다.

미래통합당 정진석 의원실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남북은 2018년 9월 연락사무소 개소 이후 통지문 132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매주 금요일 열리던 남북 연락소장 회의가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중단되면서 연락사무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월 30일엔 코로나 확산을 우려한 북측의 요구로 우리 측 상주직원 전원이 철수했다. 이에 따라 남북은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통해 연락 업무를 유지해왔다. 건물 유지 보수를 위해 남측의 전력과 식수도 계속 북측에 전달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북한이 지난 4일 김여정 담화와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 이어 9일 남북 간 통신을 완전 차단 조치를 취하면서 완전히 끊어졌다. 우리 정부는 연락사무소 폭파 직후인 이날 오후 3시 40분쯤 전기 공급을 중단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7/20200617002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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