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뿐인 합의로 드러난 '싱가포르 美北회담'
 

미국과 북한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정상회담을 가진 지 2년이 흘렀지만 북한 비핵화와 미·북 관계는 오히려 회담 전보다 못한 상황이 됐다는 평가가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전직 외교관은 "밀월을 과시하던 미·북이 작년 하노이 노딜로 서먹해지더니 이젠 아예 으르렁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로 미국 내에서 '코피 작전' 등 군사 옵션이 거론되던 2017년 '강 대 강 대치' 국면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정원에서 함께 산책하고 있다.
'세기의 회담'이라더니… - 미국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정원에서 함께 산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북한은 정상회담 2주년을 맞은 12일 리선권 외무상 담화를 통해 "싱가포르에서 악수한 손을 계속 잡고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도 '북남 관계 총파산'을 거론하며 연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세기의 회담'으로 주목받았던 싱가포르 합의가 김정은의 국제무대 데뷔 이상도 이하도 아닌 '껍데기뿐인 합의'였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싱가포르 미·북 공동성명엔 ▲미·북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발굴·송환 등 4가지가 담겼다. 이 중 미군 유해 송환만 2018년 8월 한 차례(55구) 이뤄졌을 뿐 나머지는 가시적 성과가 전무하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제네바 합의보다 후퇴한 합의였는데, 이마저도 이행된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을 즈음해 '비핵화 전(前) 단계'로 약속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모라토리엄)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쇄를 이행하는 듯하다 뒤집었다. 특히 작년 5월 이후 17차례에 걸쳐 총 34발의 각종 탄도미사일·방사포를 발사했다. 미 본토를 타격하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없었지만, 작년 10월 신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북극성-3형'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가동 중인 정황도 계속 포착되고 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11일(현지 시각)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역량을 개발하며 역내 미국 본토들과, 잠재적으로는 미 본토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2년 전 약속했지만 지금은

작년 2월 '하노이 노딜'로 서먹해진 미·북 관계는 그해 10월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이후 악화일로다. 북한은 '새로운 길' '성탄절 선물'을 운운하며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발사 유예) 철회를 위협했고, 김정은은 작년 말 열린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충격적 실제 행동" "새로운 전략무기"를 예고했다. 이후 터진 코로나 사태로 접점을 찾지 못하던 미·북 관계는 최근 남북 관계 악화와 맞물려 다시 수렁에 빠지는 모양새다.

친분을 과시해온 두 정상의 관계도 예전만 못하다. 두 정상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잊을 만하면 친서를 주고받았지만 비핵화 이슈 같은 '알맹이' 없이 안부를 주고받는 수준이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은 지난 3월 트럼프 친서와 관련, "조(북)·미 사이 관계는 두 수뇌들 사이 개인적 친분 관계를 놓고 섣불리 평가해선 안 되며 그에 따라 전망하고 기대해선 더욱 안 된다"고 했다. 틈만 나면 "김정은과 좋은 관계"임을 강조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북한이란 단어 자체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보다는 상황 관리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사태 확산과 전국으로 번진 인종차별 시위로 대선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치적 보따리를 주지 않겠다"는 북한과 협상을 해봐야 대선 캠페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북한이 확실한 비핵화 조치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교착 국면은 풀릴 수 없다는 게 미 정가 주류의 분위기"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3/20200613000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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