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전단금지법 약속에도 대남비방 수위 높여… 왜 이러나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지난 4일부터 연일 대남 비방·중상을 퍼붓던 북한이 9일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끊고 "대남 사업을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한다"고 밝히자 통일부 등 대북 정책 관련 부서들은 당혹감을 넘어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청와대가 나서 전단 살포를 "백해무익한 행위"로 규정하고, 정부·여당이 '김여정 하명법'이란 야당 비난 속에 '대북전단살포금지법'(가칭)을 밀어붙이는데도 북한이 진정하기는커녕 공세의 강도를 더욱 높였기 때문이다.

전직 안보 부서 관리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대북 전단은 핑계일 뿐이고 북한은 경제난 등 내부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작정하고 '남조선 때리기'를 하는 것"이라며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언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해서는 남북 관계를 풀기 어렵다"고 했다.

대남 충격 요법 총동원한 北

북한이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대적 사업'이라는 용어를 공개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북한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대통령과 군 수뇌부를 '역도' '호전광'으로 부르며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있지만, 대놓고 '적'이라고 한 기억은 없다"고 했다.

'대적 관계 전환'을 선언한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과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은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서울에 내려와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튼 주역들이다. 이들은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죗값을 정확히 계산하겠다"고 했다. 평창올림픽 이후로도 여러 계기에 우리 정부 고위 인사들과 교분을 나눈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남북 간 통신선을 모두 끊어버린 것도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과거에도 최소 6차례 통신선을 끊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그런 적이 없다.

문제는 북한의 대남 공세가 전혀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통신선 차단 소식을 전하며 "이번 조치는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 공간을 완전 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라고 했다. 후속 조치가 이어진다는 얘기다.

대놓고 탈북자·삐라 탓하는 건 이례적

이번에 대북 전단 사태를 다루는 북한의 행태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전문가들은 북한 전 주민이 보는 노동신문에 '탈북자'와 전단 문제가 연일 도배되다시피하는 점에 주목한다. 고위급 탈북민 A씨는 "탈북자나 삐라 문제는 북한의 체제 취약성과 직결돼 다들 쉬쉬한다"며 "부득이 언급하더라도 대남·대외 매체를 이용한다"고 했다. '해묵은 이슈'인 전단 살포를 트집 잡아 북한이 김여정 담화(4일) 이후 6일째 우리 정부를 난타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북한이 언급을 꺼리는 탈북자·삐라 이슈까지 동원해 주민들의 대남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유성옥 '진단과 대안 연구원' 원장은 "북에선 제재 장기화와 코로나 사태로 경제난이 심화하며 주민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이라며 "분노의 에너지를 대남 적개심으로 돌리려고 한다"고 했다. 북한이 내부 불만 해소를 위해 '외부의 적'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북한에 극심한 경제난을 초래했다"고 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한국에 대해 쌓인 불만·불신감이 폭발하고 있다는 시각(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있다. '남조선이 해준 게 뭐냐'는 반발심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총선에서 압승한 정부·여당의 분발을 촉구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으로선 대북 제재를 무효화시키는 게 시급하다"며 "한국을 때리는 건 제재의 약한 고리를 뚫고 나오라는 주문"이라고 했다. 다만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스스로 우리 정부에 대해 '무능하다'고 한 걸 감안하면 한국과 대화·교류해야 할 동인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북한이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한국을 때리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10/20200610001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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