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한국 매체, 북 선전매체 보도 여과없이 중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북한이 최근 격화하는 미국의 인종차별 항의 시위와 관련해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적 문제를 비난하는 보도를 내놓은 등 사안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모양새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아프리카 원숭이’ 잡종’이라고 공개 지칭하는 등 인종차별적 행태를 여러 차례 보여왔다. 북한이 인종차별 문제를 진심으로 우려하기보다는 반미(反美) 정서를 유발하면서 대내외에 북 체제를 선전하려는 의도에서 이번 사안을 활용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한국 매체들은 북한의 이 같은 기사를 여과 없이 옮기며 한국 사회에 ‘중계 보도’하고 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6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하는 모습. /연합뉴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인종주의시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사회에서 갖은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야 하는 흑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시위자들은 백악관 주변에 모여 경찰들의 인종차별행위에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분노를 터뜨렸다"면서 "경찰들은 최루가스를 쏘아대며 시위자들을 탄압하고 집단적인 검거소동을 일으켰다"고 전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미국 경찰들의 흑인 살인 만행을 규탄하고 있다"면서 유엔 인권고등판무관, 러시아 외무성, 이란 외무성 등의 인종차별 규탄 입장을 언급했다.

노동신문은 영국·독일·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전했다. 신문은 '유럽 나라들에서 미국 경찰들의 흑인 살인 만행에 항의하여 시위와 집회' 제목의 기사에서 "영국 각지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떨쳐나 미국 백인 경찰들의 불법 무도한 살인행위를 규탄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는 지난달 30일부터 정규뉴스 시간에 흑인사망 사건의 경과 등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며 미국 내 시위 상황을 보도하고 있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매체들도 시위 확산 소식을 연일 전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그간 여러 차례 인종차별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訪韓)에 대해 보도하면서 각종 인종비하적 표현을 사용해 국제사회에 큰 논란을 불렀다. 조중통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혈통마저 분명치 않은 잡종’이라거나 ‘인간의 초보적인 면모도 갖추지 못한 추물’, ‘아프리카 동물원의 원숭이 무리 속에 끼워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빵 부스러기나 핥으면서 사는 것이 제격’이라며 비난했다.

이에 미 백악관이 공식 반발도 했다. 케이틀린 헤이든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북한 관영통신이 과장된 언동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번 언급은 특히 추하고 무례하다”고 밝혔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북한에서 나오는 언사를 표현하려면 얼마나 많은 단어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우리는 공격적이고 터무니없으며 불합리한 표현을 봐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겨우며 사실에 근거한 표현도 아니다. 그 나라(북한)의 지도자가 그런 말을 사용해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솔직히 불쾌한 일”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3/20200603016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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