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이란 비난하면서 美北 협상 틀어질까 우려해 북한·북핵 문제 언급 안한 듯
방위비 분담금 '동맹 몫' 발언… 협상 안 끝난 한국에 증액 압박
 

트럼프의 역대 연두교서 북한 발언 변화 정리 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각) 미 의회에서 열린 새해 국정 연설(연두교서)에서 북한·북핵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작년 말 소집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 회의 보고에서 '미국'을 20차례 언급하며 각종 협박성 언급을 쏟아낸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베네수엘라에 대해 "민주주의가 회복되길 바란다"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잔인한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이란에 대해서도 "핵무기 추구를 포기하고 테러와 죽음, 파괴를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를 두고 "북핵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의 우선순위에서 사라진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북한에 관한 발언을 피했을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5일 "북한에 대해 섣불리 언급하면 앞으로 미·북 간 협상에서 북한이 악용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장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북한 문제를 연설에 포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대선을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 상원의 탄핵 표결을 하루 앞두고 한 이날 연설에서 국정 성과 홍보에 주력했다. 작년 국정 연설에서 '치적'으로 과시한 미·북 비핵화 협상은 작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에 빠졌다. 김정은은 새해 벽두부터 미국을 향해 "새로운 전략 무기" "충격적 실제 행동"을 말하며 위협했다. 현재로선 미·북 관계가 개선되기보다는 나빠질 가능성이 더 큰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치적'으로 포장하기 어려운 이유다. 북한 문제를 잘못 언급했다간 미 국내에서 역풍을 맞거나, 북한이 미국의 의도를 오판할 우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 연두교서 세 번 중 북한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무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취임 후 첫 국정 연설이었던 2018년 1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직후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탈북자 지성호씨를 연설 현장에 초청해 "북한의 잔인한 독재 정권보다 자국 시민을 더 완전하고 잔인하게 억압한 정권은 없었다"고 했다.

작년 2월 연설에서는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8개월 전 열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의 효과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김정은 관계는 좋다" "김 위원장과 2월 27~28일 베트남에서 다시 만난다"며 2차 미·북 정상회담 일정을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외교가에선 "2018년엔 북한을 적대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엔 김정은과 '브로맨스'를 과시하더니 올해는 아예 무시 기조로 돌아섰다"는 말이 나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동맹의 공정한 몫'을 언급하며 "나는 다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서 4000억달러 이상 분담금을 올렸고, 최소한의 의무를 충족하는 동맹국 수는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의무'란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GDP의 2% 이상으로 늘리기로 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에 분담금 증액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6/20200206001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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