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개소 이래 첫 운영 중단… 전화·팩스로 연락업무는 유지
정부 일각, 北과 공동방역 기대감

北 맹경일, 최근 남측 인사 만나
"美·남조선에 기대할 게 없다… 금강산관광도 현대아산과 정리"
 

급속 확산 중인 '우한 폐렴'의 불똥이 남북 관계로도 튀고 있다. 북한이 30일 우리 측에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운영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전염병에 극히 취약한 북한 당국이 고강도 '쇄국 정책'을 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작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도 근근이 유지돼 온 남북 간의 유일한 '대면(對面) 소통의 창구'가 닫혔다. 연락사무소가 문을 닫는 것은 2018년 9월 개소 이후 처음이다.

北 "국가 존망" 운운하며 방역에 총력

통일부 이상민 대변인은 이날 "남과 북은 연락대표 협의를 통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이 완전 해소될 때까지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운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며 "서울-평양 간 별도 전화선과 팩스선을 연결해 연락 업무는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염병을 이유로 연락사무소 운영이 중단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북한 측의 일방 요구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개성에서 근무해 온 우리 인력 58명은 이날 오후 급하게 짐을 싸 남측으로 복귀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우리 측 직원들을 태운 차량이 30일 밤 경기 파주 통일대교를 빠져나오고 있다.
개성 연락사무소 철수하는 우리측 직원들 -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우리 측 직원들을 태운 차량이 30일 밤 경기 파주 통일대교를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우한 폐렴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한 북한은 이미 확진자가 나온 한국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며 방역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북 제재 속에 거의 유일한 합법적 외화벌이 수단인 관광 수입도 포기했고, 중국과의 정규 무역에 이어 밀수까지 틀어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대외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북·중 무역이 중단될 경우 북한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고위급 탈북민 A씨는 "단둥-신의주 세관을 보름만 막아도 평양에서 물품 부족 현상을 겪는다"며 "무역 중단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북한 경제가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과거 사스(SARS), 메르스(MERS) 때와 비교해 북한이 (방역에) 이례적인 동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난 심화로 김정은의 위상이 취약해진 상황에 전염병까지 유입되면 민심 이반이 걷잡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라며 "막으면 경제난이 심화되고, 안 막으면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라고 했다.

◇맹경일 "남조선에 기대할 것 없어"

우한 폐렴이 확산세임을 감안하면 북한의 '쇄국 기조'는 최소 수개월 이어질 전망이다. 북한은 최근 중국 내 북한 전문 여행사들에 "관련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중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올 들어 의욕을 보인 북한 개별관광 등 각종 대북 사업들은 첫 삽도 못 뜰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이 연락사무소까지 닫자고 한 데엔 누적된 대남 불만이 반영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의료진이 주민들에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한 북한 주민들 - 북한 의료진이 주민들에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30일 주민들이 우한 폐렴 예방 대책 안내를 받는 모습을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그럼에도 정부 일각에선 이번 우한 폐렴을 계기로 경색된 남북 관계에 접촉면이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감지된다. 간만에 남북 간 협의를 통해 연락사무소 가동 중단이 결정됐고, 대체 수단(전화·팩스)까지 마련했다는 점을 두고 북측의 '대화 의지'가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우한 폐렴'이 공동 방역도 가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북한의 험악한 대남 기류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북한의 대표적 '대남 일꾼'인 맹경일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남측 인사를 만나 "미국과 남조선에 기대할 게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관계자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북한이 고(故) 문선명 총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보낸 축전과 화환을 받기 위해 최근 중국에서 맹경일을 만났다"며 "북한은 올해 안에 미국, 한국과 만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맹경일은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도 "현대아산과 이번에 확실히 정리하고 독자 관광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양덕 온천관광지구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를 묶어 관광사업을 본격화하고 싶은데 현대와 맺은 (금강산관광) 계약이 발목을 잡는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31/2020013100251.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