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서 '상생 평화공동체' 강조… 文, 독자 대북제재 완화 의지
강경화·이도훈 줄줄이 미국행 나서… 이견땐 관계 험악해질 듯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신년 인사에서 "남북 관계에서도 더 운신(運身) 폭을 넓히겠다"고 한 데는 독자적 대북 정책을 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그간 북한과 평화·경제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구상을 수차례 밝혀 왔으나, 미국의 '대북 제재 유지' 기조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제는 적극적 대북 정책을 통해 남북 관계와 미·북 대화를 견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남(南)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상황에서 우리 의지만으로 북한 문제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과 제재 문제로 이견을 빚을 경우 한·미 관계가 험악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외교·안보 핵심 라인의 1월 연쇄 방미(訪美)를 추진 중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 문제와 관련, "지난해에도 우리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며 한반도 평화를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북·미 정상 간 대화 의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는 행동 없이 오지 않는다"며 '운신의 폭 확대'를 통한 '상생 번영의 평화 공동체'를 강조했다. 또 "유엔 총회에서 제안한 '비무장지대 국제 평화지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상생 번영의 평화 공동체'는 그간 스스로 여러 차례 언급해온 '남북 평화 경제 구상'을, '운신의 폭 확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대북 제재 면제·완화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는 말이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의 전략·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인지 말하긴 어렵다"며 "(남북 관계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을 수만은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부 소식통은 "'상생 번영의 평화 공동체'는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남북 철도 연결 등 각종 협력 사업을 통한 평화 경제"라며 "이를 위해 우리 정부가 미측에 요청하는 제재 완화·면제가 결국 '운신의 폭 확대'"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도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에게 남북 철도 연결을 포함한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 비전'에 함께해달라고 요청해 긍정적 답변을 받았다. 중국·러시아가 최근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에도 '남북 철도·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외교가에선 "대통령 임기 4년 차를 맞아 정부가 남북 철도 사업 등을 매개로 중·러와 함께 대북 제재 완화를 시도하면서 향후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까지 속도를 내려 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도 이날 당 회의에서 "금강산도 다시 열고 개성공단에서 기계 소리를 다시 들으며 남북 간 도로와 철도도 연결해 담대한 민족의 여정을 다시 시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북의 강경 대치 속에 김정은이 '충격적 실제 행동'을 운운하며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발사 유예) 파기를 위협한 마당에 정부·여당이 대북 제재 완화·면제를 시사하며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것 자체가 국제사회의 제재 공조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중·러의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에도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상태다.

외교부 수뇌부의 '연쇄 방미'는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추진되는 것이다. 강경화 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추진 중이고,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면담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 차관보는 3일 출국해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만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3/2020010300143.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