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신년 협박]

南은 의도적 무시… 작년 신년사선 24번 언급, 올해는 사실상 '0'
육성 신년사 발표 안한 건 집권 후 처음… 美 자극에 부담 느낀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일 새해를 맞아 매년 발표해 오던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지난달 28일부터 나흘간 마라톤 식으로 진행된 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한 결과 보고로 대체했다. 김정은은 2013년부터 매년 1월 1일 육성으로 전년도 사업 성과와 새해 과업을 제시하는 신년사를 발표했다. 북한이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물론 신년공동사설조차 발표하지 않은 것은 지난 1987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이다.

전원회의에서 미국을 겨냥해 '새로운 전략무기' '충격적인 실제 행동' 등 초강경 대응을 선언한 김정은이 육성으로는 대미(對美) 비난과 도발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위협 수위를 조절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이번 발언에서 남북 관계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고의적으로 남한을 패싱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의식해 육성 신년사 안 한 듯

김정은은 집권 첫해인 2012년엔 신년공동사설을 냈고, 2013년부터는 직접 육성으로 신년사를 했다. 신년사는 노동당 본부 청사에서 전날 녹화방송으로 진행됐다. 2013~2015년엔 신년사 때 인민복을 입고 등장했고, 헤어스타일과 목소리엔 변화를 줬다. 2016년에는 뿔테 안경을 쓰고, 2017년에는 처음으로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를 맸다. 2018년에는 흰색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신년사 무대 배경도 화려하게 바꿨다. 2019년에는 트럼프의 백악관 집무실을 모방해 소파에 앉아 신년사를 읽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1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미국을 겨냥해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1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미국을 겨냥해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그러나 올해는 육성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육성으로 직접 미 정부를 비판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경 노선을 밝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은 미·북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트럼프와 친분 관계 때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직접 육성으로 자극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나는 김정은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직접 김정은 비판은 피하면서 다른 정부 당국자에게 대북 비판 역할을 맡기는 모양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년사에 작년 성과에 대한 평가를 담아야 하는데 '하노이 노딜' 등으로 내세울 성과가 없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 南은 의도적 무시

김정은은 전원회의에서 대남 정책을 비롯해 한국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뚜렷해진 '남조선 무시'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원회의 결과문(200자 원고지 91매 분량)에는 '남조선'이라는 말이 딱 한 번 등장한다. "미국은 첨단 전쟁 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했다"는 대목이다. 미국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거론한 것일 뿐 대남 메시지는 사실상 전무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김정은이) 남북 관계를 현 정세의 주요 변수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선 '북남'을 17차례, '북과 남'을 7차례 언급했다. 또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거론하는 등 남북 관계에 상당한 비중을 뒀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남북 관계는 미·북 관계의 종속 변수이며 북한의 대외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렸다는 의미"라며 "북한이 대남 군사 도발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2/20200102002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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