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지난해 8월 유엔에서 증언하는 오토 웜비어 부모. 미 하원은 지난 12월 11일 오토 웜비어 법안이 포함된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켰는데 트럼프 대통령(왼쪽)은 지난 12월 17일 상원을 통과한 이 법안에 서명했다. photo 뉴시스
지난해 8월 유엔에서 증언하는 오토 웜비어 부모. 미 하원은 지난 12월 11일 오토 웜비어 법안이 포함된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켰는데 트럼프 대통령(왼쪽)은 지난 12월 17일 상원을 통과한 이 법안에 서명했다. photo 뉴시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3학년이던 오토 웜비어는 2016년 1월 관광차 북한을 방문했다가 숙소인 평양 양각도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됐다. 북한 법원은 웜비어에게 체제전복죄를 적용해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했다. 17개월간 감옥살이를 하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웜비어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송환 요구로 2017년 6월 고향인 신시내티로 돌아왔지만 6일 만에 병원에서 숨졌다. 이후 웜비어 부모는 아들을 고문한 북한에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국 의회에서 법을 제정해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는 2017년 11월 7일 북한의 국제 금융시장 접근을 전면 차단하는 내용의 대북 금융제재 법안, 이른바 ‘오토 웜비어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브링크 액트(BRINK Act)’라고도 불리는 이 법안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안은 상원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무산됐다. 하지만 웜비어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상원에 이 법안을 제정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결국 상원은 지난 6월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오토 웜비어 법안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하원은 12월 11일 상원과의 조정과 협의를 거쳐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을 찬성 377표 대 반대 48표로 가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월 17일 상원을 통과한 이 법안에 서명했다.


지난 12월 11일 가결된 오토 웜비어 법안

미국 조야에서 김정은과 북한 정권이 ‘새로운 길’을 주장하면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 등 강경한 추가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도 군사조치를 포함해 김정은과 북한 정권에 대한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2.0’ 전략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최대 압박 2.0 전략을 추진할 경우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포함된 ‘오토 웜비어 법안’의 내용이 김정은과 북한 정권을 옥죄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내용을 보면 대북 제재 대상에 오른 특정 개인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금융기관에 대해 미국 국내의 자산동결과 대리지불계좌 개설 제한과 같은 제3자 금융제재를 적용하도록 했다. 또 북한과 기준치 이상의 원유와 정제유 제품, 석탄과 기타 광물을 수출입할 경우 의무적으로 제재를 적용하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특히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3자 금융제재이다. 이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에 준하는 내용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정부나 기업·은행·개인 등에 대해서도 제재하는 것으로 ‘제2차 제재’ 또는 ‘제3차 제재’라고도 불린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제재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시행된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3국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시행하는 조치이다.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따라 미국 정부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제3국 은행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중국 은행들이 앞으로 북한과의 거래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아 북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최대 압박 2.0 전략을 추진하려는 것은 무엇보다 그동안의 대북 제재조치에 상당한 구멍이 뚫렸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부터 지금까지 김정은과 두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판문점 회동을 비롯해 대화를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은이 보내온 서한을 꺼내들면서 ‘좋은 관계’임을 과시하는가 하면 북한 정권의 각종 도발을 눈감아왔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상당히 헐거워졌다.


세컨더리 보이콧 실제 가동되나

실제로 지난 9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이 제재 대상으로 추가할 것을 권고한 북한 선박 6척, 미국 재무부가 불법 환적을 의심하고 있는 선박 25척 등의 운항 기록을 분석한 결과, 최근 세 달 사이에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켠 북한 선박은 6척에 불과했다. 북한 선박들은 그동안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석탄이나 석유를 밀거래할 때 주로 AIS를 끈 채 항해해왔다. 북한은 지난해 불법 환적으로 1년간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상한선(연간 50만배럴)의 7배가 되는 350만배럴의 석유 정제품을 수입한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에도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의 불법 환적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 1년간 미국이 신규 지정한 대북 제재 대상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 6월 1일부터 올해 6월 3일까지 새로 지정한 대북 제재 대상은 선박을 포함해 36개에 불과하다. 이는 2017년 6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미국 정부가 제재 위반으로 지정한 200개에서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앞으로 미국 정부가 최대 압박 2.0 전략을 추진하게 되면 불법 환적 근절을 위한 제재조치는 물론 북한 선박에 대한 강제 정박과 나포 및 수색과 압수 등을 추진해야 한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이 ‘편의치적(便宜置籍·자국 선박을 다른 나라에 등록하는 것)’ 제도를 활용해 선박 국적을 세탁할 수 있다고 보고 2016년 3월 채택된 결의에서 제3국이 북한 선박에 국적을 빌려주는 것도 금지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의 이런 결의는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불법 환적은 물론 비(非)북한 선적의 유조선을 통해 직접 정제유를 운반하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호주 및 뉴질랜드 등 7개국이 합동으로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을 단속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국이 불참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 미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를 통해 북한의 불법 환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되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독자적인 강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또 해상 봉쇄 등 강경한 방안도 동원해야 한다.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이동발사대에서 화성-15형을 세우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이동발사대에서 화성-15형을 세우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추가 도발 시 자동 적용되는 원유 카드

미국 정부가 추진할 최대 압박 2.0 전략 중에서 가장 강력한 카드로는 북한에 대한 원유와 정제유 공급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 28항을 보면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하거나 대륙간 사거리를 갖춘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유류(petroleum) 공급을 제한하는 추가 조치를 반드시 취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추가 도발 시 자동으로 적용되는 이른바 ‘트리거 조항’이다. 현재는 대북 연간 원유·정제유 수입 물량을 각각 400만배럴·50만배럴로 제한하고 있는데, 트리거 조항을 발동할 경우 원유와 정유 제품(휘발유·등유·경유 등)의 대북 유입을 전면 차단할 수 있다. 원유 공급을 완전 차단하면,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고 주장한 것과는 달리 관광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는 김정은과 북한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1〜2018년 북한의 수입 상위 품목은 원유(7.2%), 중유(3.7%), 경유(3.6%) 등 일상생활과 산업 생산에 필요한 석유류였다. 특히 원유는 북한 군부가 무기와 각종 장비를 운영하는 데 필수품이다. 원유와 정제유 공급을 완전 차단하면 북한의 무력도발을 저지할 수도 있다. 게다가 원유 공급을 차단하면 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등 비밀거래도 막을 수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의 원유가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비밀리에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그 대가로 북한은 이란에 무기 등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 핵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완전 차단하는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카드는 새로운 돈줄이 되고 있는 북한 관광을 차단하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을 비롯한 국제관광문화지구를 구축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외화를 확보하며 제재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뒷배’로 삼아 독자적인 관광 개발로 활로를 찾겠다는 것이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속셈이다. 나진·선봉의 1박2일 관광비용은 880위안(15만원), 단둥에서 신의주를 거쳐 평양~개성~원산~금강산까지 둘러보는 엿새짜리 관광상품은 4300위안(71만원) 수준이다.

올해 북한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베이징·상하이·선양에서 정기 노선을 운항해온 고려항공은 최근 다롄을 주 2회 취항하는 등 급증하는 유커들을 실어나르느라 바쁘다. 북한 정권은 최근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 투자설명회를 베이징, 선양 등에서 수차례 개최하며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북한 정권은 이처럼 관광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관광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거나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경우 독자적으로 북한 관광상품을 취급하는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 여행사들을 제재 리스트에 올릴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 재개를 철저하게 차단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는 또 최대 압박 2.0 전략의 일환으로 북한의 해킹 등 사이버 범죄 차단에 나서야 한다. 미국의 정보기술(IT) 보안업체 센티넬원은 보고서(12월 11일자)에서 “북한의 해킹조직 라자루스가 러시아 등 동유럽 사이버 범죄조직이 얻은 기밀정보와 네트워크 접근 권한을 임대하는 형식으로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유럽권 범죄조직이 돈을 받고 라자루스에 악성 프로그램 서비스를 빌려주는 형태로 협력하고 있다는 것으로, 사실상 북한이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숨기기 위해 외부 하청업체를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라자루스는 2014년 미국 소니픽처스 해킹, 2016년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해킹, 2017년 워너크라이 랜섬웨어(암호화 등 방식으로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뒤 이를 인질로 삼아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 유포 사건 등을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북한의 관광 돈줄도 차단하라

이와 관련 사만사 래비치 전 미국 부통령 안보부보좌관은 “북한의 해킹 조직이 각국 은행들과 자동현금지급기(ATM) 공격 등을 통해 수억달러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도 보고서에서 북한 해킹 조직이 최소 17개국의 금융기관과 가상화폐교환소 등을 대상으로 35차례 사이버 공격을 벌였다면서 피해액은 최대 20억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게다가 북한의 사이버 공격 능력은 군사무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국제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은 군, 금융기관, 언론사 등 전 세계 중요 사회 기반시설을 겨냥한 북한의 해킹능력이 갈수록 정교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래비치 전 부보좌관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응해 제재와 이를 넘어선 행동을 통해 북한이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의 최대 압박 2.0 전략에서 가장 강력한 카드는 군사조치이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미 연합훈련 재개를 시급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 B-52H, B-1B, B-2A 등을 한국에 전개하고 F-22 스텔스 전투기를 상주시키고 항공모함과 강습상륙함 및 이지스 구축함, 잠수함 등을 한국 영해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이와 함께 사드 등 미사일방어체계(MD)를 추가 배치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 의원들과 한반도 전문가들은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격상해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북한 비핵화의 최선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은 “우리는 북한이 미국을 핵무기로 타격할 군사적 능력을 개발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이 그 길을 고집한다면 북한은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불태우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공화)도 “평양의 미치광이를 막기 위해 최대 압박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도 “미국은 본토와 역내 동맹국들의 안보를 위해 MD를 추가 배치해야 한다”고 밝혔고, 크리스 밴 홀른 상원의원(민주)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잭 리드 상원의원(민주)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유류를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릭 스콧 상원의원(공화)은 “김정은이 ‘새로운 길’을 택할 경우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막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군사 옵션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북한을 압박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후안 자라테 전 재무부 테러·금융담당 차관보는 “새로운 제재를 동반한 추가 압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앤서니 루지에로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비핵화와 북한 정권이 과거에 견뎠던 것을 훨씬 능가하는 재정적 고통 사이에서 불편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최대의 압박을 2단계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김정은이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면, 재선이라는 ‘꽃길’을 가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압박 2.0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20/20191220032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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