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협상이 끝내 틀어지면 '화염과 분노'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
北 "美, 국내 어젠다를 협상에 이용말라… 그들과 긴 대화 필요없어"
트럼프 "北 도발 땐 내가 놀랄것" 완곡 어법, 인권 문제도 자극 피해
 

미국 대선이 미·북 비핵화 협상의 변수로 등장했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내년 미국 대선을 거론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선에 개입하지 말라"며 공개 경고했다. 탄핵 조사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핵 문제까지 탈선하면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북한에 도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7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지속적이며 실질적인 대화'는 국내 정치적 어젠다로서 북·미 대화를 편의주의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간벌기 속임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 미국과 긴 대화를 가질 필요가 없다"며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미 내려졌다"고 말했다. 김 대사가 언급한 '국내 정치적 어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캠페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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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일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준공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왼쪽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나는 그(김정은)가 선거(미 대선)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지켜봐야 한다"며 북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실험 도발을 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조선중앙TV·AP 연합뉴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이 적대적으로 행동한다면 나는 아마 놀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북한 김정은)는 내가 (내년에)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안다"며 "나는 그가 선거에 개입하길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선 침묵해왔지만, 미국 본토를 위협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핵실험 도발을 해 대선에 영향을 줄 정도가 되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비핵화 협상과 대선 문제를 연계해 발언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모두 인정한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도 부정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껏 북한 비핵화 협상을 자신의 대표적 외교 치적으로 꼽고 북한이 ICBM과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자랑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만약 ICBM이나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날 북한의 대선 개입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북한에 수세적 입장일 수밖에 없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이성윤 미 터프츠대 교수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북한은 상대방의 정치적 문제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봐도 북한에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알 수 있다. "나는 김정은과 관계가 매우 좋다"고 여전히 유화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북한이 적대적 행동을 하면 "훨씬 더 크게 보복하겠다"고 하지 않고 "아마 놀랄 것"이라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6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것도 북한 도발에 대한 트럼프의 우려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전화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해 워싱턴 시간으로 6일 밤 9시에 약 30분간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밤중에 전화한 셈이다. 그만큼 북한의 도발 움직임에 트럼프 대통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은 한·미 정상 통화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북한과 관련된 전개 상황들을 논의했다"며 "두 정상은 이 문제들에 대해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기로 약속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개입 우려 발언에도 도발할 경우 양국 관계가 '화염과 분노'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우리가 (북한에) 무력을 써야 한다면 쓸 수 있다"고 말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센터 국장은 지난 1일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북한이 ICBM·핵도발을 할 경우) 이는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화염과 분노'라고 불렀던 나날들로 되돌아감을 의미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말폭탄을 주고받는 속에서도 미국은 긴장을 낮추기 위한 상황 관리에 들어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미국이 유엔 안보리의 북한 인권 토의 개최에 대해 지지를 보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보리는 2014년부터 매년 연말 북한 인권을 의제로 올려 토의해왔지만, 지난해 미·북 대화가 시작된 뒤 중단됐다. 영국 등 동맹국들은 여전히 인권 토의를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이 지난 6일 '지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반대할 경우 북한 인권 토의 개최는 어려워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09/20191209001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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