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금강산 철거요구' 일부 수용
 

정부가 북한의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요구를 일부 수용하고 북한이 역점 개발 중인 원산·갈마 관광지구 개발 문제도 논의하자고 북에 제안한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우리 기업과 정부 돈 약 1조원이 들어간 금강산 시설물을 우리 자금과 장비로 철거할 뿐만 아니라, 북한이 제재 무용론을 강변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치적'으로 선전해온 원산·갈마지구 개발에 동참할 뜻을 비친 것이다. 정작 금강산 관광 중단을 부른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거나 관광객 신변 안전을 제도화할 계획은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연철(오른쪽) 통일부 장관이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토론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연철(오른쪽) 통일부 장관이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토론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장관은 "동해 관광특구 공동 개발은 9·19 남북 정상회담 합의"라고 했다. /오종찬 기자
통일부는 지난주 북측에 보낸 전통문에서 금강산 시설의 정비(철거) 문제와 금강산 관광 발전 방향을 언급하면서 원산·갈마지구 개발도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언급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평양 남북공동선언에 나온 동해관광공동특구 구상을 언급하면서 원산·갈마지구도 거론했다"며 "일단 북측의 일방 철거를 막고 남북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이날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지금 현재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구체적이지 않다" "원산·갈마지구 투자 문제는 조건과 환경이 마련돼야 논의가 가능하다"면서도 "동해관광특구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것은 9·19 남북정상회담 합의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원산·갈마에서 금강산까지 관광지구를 자체 개발했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 어떤 식으로 관광을 갈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며 교통 문제를 거론했다. 구체적으로 동해선 철도, 양양~원산 항공기 운항 등을 언급하며 "크루즈 선박 운행 또한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관광 대국' 구상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교통 인프라' 개발·투자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시설 철거 문제로 북측과 1개월 넘게 줄다리기를 해온 통일부는 "일부 노후 시설 철거는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습이다. 김 장관은 "금강산 관광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숙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컨테이너를 사용했는데 지금 금강산 지역에 340여개 있다"며 "(이 컨테이너는) 관광 중단 이후 관리하지 못한 채 방치됐다"고 했다.

앞서 통일부는 지난달 29일 "우리 측은 재사용이 불가능한 온정리라든지 고성항 주변 가설 시설물부터 정비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 재개 시 이 컨테이너 철거는 불가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현재로서 분명한 '철거' 대상은 이 컨테이너뿐이고 다른 시설물들은 보수를 거쳐 사용한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정부는 원산·갈마 개발 동참과 금강산 시설 철거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대면 협상을 완강히 거부해온 북측과 마주 앉기 위한 일종의 유인책"이라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유엔 제재하에서는 대북 투자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산·갈마 투자 문제는 어차피 본격 논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언급 자체가 국제사회 제재 틀에 균열을 만들 수 있고, 북한에는 '남조선은 뭘 요구해도 받아준다'는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조건을 붙였다 하더라도 명백한 대북 제재 위반 사항을 제안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한국이 제재의 약한 고리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는 "김정은 우상화 사업에 왜 우리 돈을 퍼주느냐는 국민적 비난에 시달릴 것"이라며 "원산·갈마 투자는 분명한 대북 제재 위반으로 우리가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승 전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은 "정부가 금강산 관광 살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북한의 막가파식 요구에 끌려다니고 있다"며 "박왕자씨 피살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의무를 망각한 처사"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03/20191203001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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