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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아버지 찾아온 전북한 축구감독 가족 북에서 온 아들-손주 “50년만에 세배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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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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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이 적에 얼굴도 모르고 헤어졌던 아버지와 함께 이번 설을 보내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

작년 4월 귀순한 북한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윤명찬(윤명찬·51)씨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반백(반백)의 나이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정식 세배를 올릴 수 있게 됐다.

그가 평양에서 태어난 다음해인 50년 아버지 봉익(89)씨가 단신으로 월남했다.

홀어머니 임봉숙(84년 작고)씨가 식당일 등으로 두 자식을 길러냈고 윤씨는 축구에 희망을 걸었다. 176cm의 장신에다 축구에 남다른 재주를 보인 그는 64년 북한 최고의 축구단인 2-8 축구단에 발탁됐다. 68년부터 북한 축구대표 선수로 활약한 윤씨는 92년엔 국가대표 감독 겸임 등을 통해 북한 축구계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그 동안 그가 서울을 찾은 것은 세 차례. 90년 10월 남북통일축구대회와 91년 5,6월 청소년 남북단일팀 구성 등을 협상하기 위해서다. 그때마다 아버지 소식을 사방에 수소문한 윤씨가 미국 하와이에 사촌누나 윤종찬(74)씨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92년 1월. 아버지가 생존해 서울에 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윤씨는 누나에게 아버지를 중국으로 모셔올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윤씨는 그 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북경의 한 허름한 식당에서 어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많이 늙으셨지만 어머니가 고이 간직하던 흑백 사진 속 아버지의 모습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공안요원들의 감시의 눈을 피한 짧은 재회였죠. ”

하지만 98년 위험이 감지됐다. 윤씨가 해외여행 때 국제전화로 아버지와 연락을 한다는 사실을 북한 공안기관에서 눈치챈 것이다. 윤씨는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탈출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간 그는 7개월간의 숨막히는 도피생활 끝에 작년 4월25일 ‘아버지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어 그 해 7월과 10월에 장녀 윤혜련(윤혜련·24)씨와 장남 윤용(윤용·26)씨도 한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풀리지 않는 회한도 있다. 탈출 도중 중국에서 북한요원에게 적발되어 다시 압송된 작은 아들(20), 그리고 소식이 끊어진 북한의 아내(49)와 막내딸(17)이 눈에 밟혀 마음이 아프다며 윤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윤씨는 “이제 아버지에게 못다한 효도를 하고 싶다”며 “한국 축구계의 발전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장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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