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결렬 후 2선 후퇴했던 김영철 대미 담화 내며 이례적 등장
美 유엔발언등 비난하며 "우리 인내심 오판"
"정상 친분관계 있지만 모든것엔 한계…실질진전 없고 교전관계 지속되고 있어"
김영철 재등장, 美 향해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 다가오자 김정은 조금함 반영된 듯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27일 "미국이 자기 대통령과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워 시간끌기를 하면서 이해 말을 무난히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2일 보도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의 모습. 중앙TV는 김영철이 지난 21일 열린 해외동포사업국 창립 60주년 기념보고회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2일 보도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왼쪽)의 모습. 중앙TV는 김영철이 지난 21일 열린 해외동포사업국 창립 60주년 기념보고회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김영철, 담화 통해 김정은·트럼프 친분 내세우면서 미국 압박

김영철은 이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위원장' 명의로 낸 담화에서 "최근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과 아량을 오판하면서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더욱 발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미·대남 협상 전면에서 사라졌던 김영철이 대미(對美) 메시지를 내며 전면에 나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영철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직을 내놓았지만 아태평화위원장 자리는 유지하고 있음도 확인됐다.

김은 담화에서 "얼마전 유엔총회 제74차 회의 1위원회 회의에서 미국 대표는 우리의 자위적 국방력 강화조치를 걸고들면서 미조 대화에 눈을 감고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느니, 북조선이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를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느니 하는 자극적인 망발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유엔 제재결의 이행을 집요하게 강박하고 있으며 추종 국가들을 내세워 유엔총회에서 반(反)공화국 결의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각방으로 책동하고 있다"고 했다.

김은 미 전략사령관 지명자가 최근 의회 상원에서 북한을 '불량배국가'로 헐뜯었으며 미국 군부가 북한을 겨냥한 핵타격훈련까지 계획하고 있다고도 했다. 찰스 리처드 미 전략사령관 지명자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규모에 대해 "불량 국가들의 제한된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답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김영철은 "제반 상황은 미국이 셈법 전환과 관련한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기는 커녕 이전보다 더 교활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우리를 고립압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북미관계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친분관계 덕분이라면서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미 수뇌들 사이의 친분관계는 결코 민심을 외면할 수 없으며 조미관계 악화를 방지하거나 보상하기 위한 담보가 아니다"라며 "조미관계에서는 그 어떤 실제적인 진전이 이룩된 것이 없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불과 불이 오갈수 있는 교전관계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다는 외교적 명구가 영원한 적은 있어도 영원한 친구는 없다는 격언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영철, 왜 다시 등장?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는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조직으로 북한이 미국 등 미수교국이나 한국 관계 개선을 모색할 때 활용해온 창구다. 김영철은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이자 통전부장으로서 아태평화위 위원장을 겸임해 왔다. 그러다 하노이 노딜 이후 통전부장을 장금철에게 넘겨준 뒤에도 이 직책은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날 담화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북한이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미 협상에서 빠졌던 김영철을 다시 내세운 이유가 주목받고 있다. 하노이 회담 때까지만 해도 대남·대미 협상을 총괄하며 2인자로까지 불렸던 김영철은 하노이 노딜 이후 숙청설까지 돌았다. 최근 북한 해외동포 행사에도 참가하는 등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평가를 받은 김영철이 다시 대미 메시지를 내고 나온 것은 지난해 미·북 실무 협상을 주도하고 미 백악관까지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김영철을 내세워 양측 정상 간 톱다운(top-down) 방식의 해법 모색 필요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란 분석이 나온다.

또 김정은이 직접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이 다가오면서 초조해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했다. 그런 김으로서는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협상을 끝내고 싶은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김이 미국에 제시한 시한은 동시에 김 자신을 옭아 메는 시한이기도 한데 미국 측이 이렇다 할 움직임에 나서지 않자 트럼프와 협상에 임했던 김영철을 다시 내세운 것이란 관측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7/2019102700227.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