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은 1980년 10월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행한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전례 없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통일방안을 제시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소제목이 붙은 이 보고에서 김일성은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제의했다.

또 민족통일정부 아래에서 남북한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연방공화국을 창립하자고 주장했다. 종래 선언적 수준에서 산만하게 제시해온 통일제의와 방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완한 이 통일방안이 바로 연방제로 통칭되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창립방안)이다.

창립방안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선결조건과 연방제의 구성·운영 원칙, 그리고 통일 후 연방정부가 실시할 10대 시정방침이 그것이다. 창립방안은 소련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1991년 「지역정부강화론」으로 수정·보완되며, 이는 2000년 6월 남북 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이름으로 재현된다.

북한이 연방제를 처음 제의한 것은 창립방안이 나오기 20년 전인 1960년 8월이다. 김일성은 8월 14일 광복 15주년 경축대회에서 남북한 자유총선거와 「과도적 대책」으로서 남북연방제를 주장했다. 1973년 6월에는 「조국통일 5대방침」을 내놓으면서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단일국호로 연방제를 실시할 것을 제의했다. 남북연방제가 고려연방제로, 다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오늘날 북한 통일방안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연방제는 바실리 쿠즈네초프 전 소련 외무차관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1960년 5월 평양을 방문한 쿠즈네초프 전 차관은 김일성과 만난 자리에서 남한에서는 남침과 공산주의에 대한 위구(危懼)가 만연돼 있으므로 평화적인 통일과 혁명 실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대안으로 기존의 남북한 제도와 정부를 그대로 둔 채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연방제안을 권유했다.

이에 대해 김일성은 『연방제는 이민족·다민족 체제 하에서나 가능하고 존재하는 것이지 한 핏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단일한 민족 하에서는 불가능하다.…세계사 어디를 보아도 단일민족 내부의 연방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쿠즈네초프가 돌아간 후 그의 제안을 다시 검토해 본 김일성은 연방제가 나름대로 「효용」이 있다고 보고 5월 20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했다.

회의에서는 연방제가 「제안」 자체로 의미가 있고, 남한에 팽배해 있는 남침과 공산주의에 대한 위구를 해소할 수 있으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실현만 되면 북한이 남한을 녹여낼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8월 14일 광복 15주년 경축사에서 처음 선보인 연방제는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었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처음부터 노동당(김일성·김정일)의 영도와 주체사상의 기치아래 「완전한 통일」(적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과도적 통일, 전술적 목표로 제시된 것이며, 이 목표는 4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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