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평양 월드컵 남북 예선전 이틀 앞두고도 TV생중계 확답 안줘
국제방송 신호 송출, 녹화중계도 불투명
정부 "北에 응원단·방송중계단 파견 협의 요청했지만 묵묵부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오는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과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3차전 원정 경기를 갖는다. 이 경기는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이 1990년 통일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에 평양 원정으로 치르는 A매치(성인 국가대표팀 간 경기)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13일 중국 베이징으로 출발해 14일 평양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경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 방송사와 북한 당국 간 생중계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중계 없이 경기가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바람에 남북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북한에 공을 들여온 문재인 정부도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게 됐다. 북한이 월드컵 남북전 응원단·방송중계단 방북을 위한 정부의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리는 북한과의 카타르월드컵 예선을 위해 평양 원정길에 오르는 한국축구 대표팀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며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리는 북한과의 카타르월드컵 예선을 위해 평양 원정길에 오르는 한국축구 대표팀이 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며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연합뉴스

방송계에 따르면, 현재 방송 중계 에이전시에서 북한에 들어가 남북 축구 예선전 생중계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월드컵 예선전이 생중계 없이 치러지는 건 거의 없는 일이지만, 이번 평양 남북 경기 중계는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다. 북한은 다른 2차 예선 중계권료보다 많은 150만달러(17억8000만원)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계권료를 두고 양측 간에 이견이 크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북한이 의도적으로 방송 중계를 무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질 가능성 때문에 중계를 아예 안 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북한은 선수단 방북 일정과 방법을 조율하기 위한 대한축구협회의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다가 지난 10일에야 베이징을 경유한 대표팀의 평양 입국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3일 에어차이나 항공편을 이용해 중국으로 떠나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하룻밤을 묵은 뒤 이튿날 방북길에 오른다.

북측이 너무 늦게 일정 조율에 나서면서 한국 응원단과 취재진, 중계 방송단 방북은 무산됐다. 북한 입국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북측의 초청장이 필요한데, 대표팀 선수들과 축구협회 관계자 외에는 이를 받지 못했다. 경기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비자 발급이나 항공편 예약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북한의 비자 발급은 축구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어서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아시아축구연맹(AFC)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방송 중계진의 방북이 사실상 무산된 만큼 남은 중계 카드는 북한이 국제방송 신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FIFA나 AFC에서 강제할 수 없다.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의 경우 최종 예선은 AFC가, 2차 예선까지는 개최국 축구협회에서 티켓 판매, TV 중계권 등 마케팅 권리를 갖기 때문이다. 2차 예선인 이번 평양 원정에서는 AFC도 북한에 중계 협조를 요청할 수 있을 뿐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전 주관 방송사인 지상파 3사(KBS, MBC, SBS)는 경기 시간에 맞춰 편성을 잡아 둔 상태지만, 북이 국제방송 신호를 보낼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달 5일 평양에서 열렸던 북한과 레바논의 조별 예선 1차전 경기에서도 생중계를 허용하지 않았다. 북한이 2-0으로 승리를 거둔 당시 경기는 다음 날 조선중앙TV에 녹화 중계됐다.

평양 월드컵 남북 예선전이 응원단 방북은 물론 생중계조차 어려워지자 정부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1월 부산 한·아세안 정상회의 답방 등을 추진해왔던 정부는 내심 평양 월드컵 예선전을 남북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으려 기대해왔다. 통일부는 지난달 북한이 2차예선 남북전을 평양에서 하겠다는 입장을 아시아축구연맹(AFC) 측에 밝힌 이후 응원단 파견과 중계방송 등에 관한 협의 진행 의사를 북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북한은 선수단과 일부 필수 인력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의 방북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최근 공식석상에서 2032년 남북 공동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대변인"이란 소리까지 들어올 정도로 북한 편에 서 왔다. 그러나 이번 평양 남북전을 계기로 양보하고도 뺨 맞던 남북 대화의 쳇바퀴가 다시 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1일 경기도 파주시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김신욱(앞줄 왼쪽) 등 대표팀 선수들이 회복훈련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경기도 파주시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김신욱(앞줄 왼쪽) 등 대표팀 선수들이 회복훈련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3/20191013006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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