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탈북민 母子 아사사건 추모 분향소 설치 한달
"남일 같지 않다"며 분향소 지키는 탈북민들
일부 대학생 단체 분향소 와서 사진 찍으며 위협도
"정부·지자체 아무도 찾지 않아 섭섭한 마음"

추석날인 1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역 3번 출구 ‘故탈북민 모자(母子) 추모 분향소’ 앞. 가을장마와 태풍이 연이어 지나고 천막 주변에 놓인 화환 위로 모처럼 볕이 비쳤다. 하얀 국화꽃 사이엔 모자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북쪽 방향으로는 추석 차례상도 차려졌다. 30여명의 탈북민들은 휴전선 너머 고향을 대신해,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북쪽을 향해 절을 했다. 한국에 온지 10년째인 탈북인 이모(59)씨는 "잘 살아보려고 남한까지 온 건데 생계비를 못 받아 굶어죽다니 애통하다"며 "주변에도 한씨처럼 어렵게 살아가는 탈북민이 많다"고 했다.

이곳은 지난 7월 관악구에서 아사(餓死)한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모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분향소다. 이들의 사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대책위원회가 지난달 14일 세웠다. 추석날로 분향소가 문을 연지 꼬박 한달이 됐다.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숨진 모자와는 직접 인연이 없던 ‘탈북민’들이다.
 
탈북민들이 13일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인근 탈북모자 분향소에 마련한 추석 차례상. /최상현 기자
탈북민들이 13일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인근 탈북모자 분향소에 마련한 추석 차례상. /최상현 기자

◇탈북모자 분향소 한달…탈북민 "배고픔·외로움, 남일 같지 않다."
지난 11일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챙기던 김모(47)씨는 "남일 같지 않아 분향소를 지킨다"고 했다. 8년전 탈북한 김씨는 서울 관악구에서 홀로 어린 딸(8)을 키우며 살고 있다. 몸이 성치 않아 일을 그만둔 뒤 수급자 신세로 지내면서 월세 30만을 감당하는 것도 빠듯하다. "세상에 한씨 집에 먹을게 고춧가루 뿐이었다잖아. 나도 오이 3개를 반찬으로 보름을 버틴 적도 있는데, 굶주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

지난 7월 31일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민 한모(42)씨와 아들 김모(6)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모자 모두 ‘사인 불명’이라는 감정 결과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한씨의 집에 있던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집 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고춧가루뿐이었다. 한씨의 사정은 더운 여름 문을 열고 산다는 이웃들도, 지자체도 몰랐다.

분향소를 지키는 다른 탈북민들 역시 숨진 한씨의 상황과 자신들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강모(57)씨는 18년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 현재 일용직 노동자로 산다고 했다. 일이 없을 때마다 이곳을 찾는 강씨는 "최근엔 열흘 동안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13일 오전 분향소 앞에서는 관악구에서 아사한 탈북민 모자의 추모를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최상현 기자
13일 오전 분향소 앞에서는 관악구에서 아사한 탈북민 모자의 추모를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최상현 기자

이들이 가난만큼 힘들게 여기는 것은 달리 의지할 인연이 없는 외로운 현실이었다. 그래서인지 분향소에서 만난 탈북민들은 서로를 ‘오라버니’ ‘ㅇㅇ엄마’ 등으로 친근하게 불렀다. 자원봉사자 강씨는 영정사진을 가리키며 "이전엔 알지도 못한 사람"이라면서도 "그래도 탈북민끼리 챙기고 의지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6일엔 탈북민 예술인 7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고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북한에서 금지곡인 영화 ‘림꺽정’의 주제곡 ‘나서라 의형제여’를 불렀다.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의 원한소리." 분향소를 지키던 이들도 위로받았다고 한다. 한 탈북민은 당시의 영상을 보여주며 "고향 노래 들으면 눈물이 나… 함께 모여서 그리움을 공유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지난 4일 분향소를 찾아와 사진 찍고 위협한 대학생과 탈북민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책위 제공
지난 4일 분향소를 찾아와 사진 찍고 위협한 대학생과 탈북민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책위 제공

◇분향소 설치 한달, 사건사고…"정부, 이슈될때만 반짝 관심"
하지만 분향 한달간 이들을 지켜보는 사회의 시선을 그리 곱지 않았다. 몰래 사진을 촬영하던 대학생단체도 있었고, 분향소를 앞에 두고 "XXX" "북한으로 꺼져라" "김정은한테 가라" 등 욕설이나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탈북민은 "슬픔을 함께 하고, 문제를 사회에 알리고 있다는 취지 였다"며 "사람들은 그저 좌우 정치색만 보는 것 같다. 우리는 색깔에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사소한 일도 큰 갈등으로 번졌다. 지난 3일 종로구청 관계자들이 천막을 찾았을 때도 그랬다. 구청 관계자들의 방문을 분향소를 철거하려는 것으로 오인한 탈북민 이모(41)씨가 승강이 도중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뿌렸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제지해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

종로구청 측은 "분향소가 따로 경찰에 신고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을 찍어두고자 했다"며 "언제까지 운영하실 것인지만 물었을 뿐이다. 철거를 시도한 적도 없고, 아직 논의도 없다"고 했다.
 
분향소에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등과 같은 정부·지자체에 항의하는 손팻말이 걸려있다. /우연수 인턴기자
분향소에 ‘탈북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등과 같은 정부·지자체에 항의하는 손팻말이 걸려있다. /우연수 인턴기자

분향소를 지키던 탈북민들은 정부의 무관심에 아쉬워 했다. 지난 한달 간 정부나 지자체 관계자들이 찾아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온 공(公)문서라곤 분향소 천막 옆에 세워둔 행사차량에 대한 ‘견인대상 차량 과태료 부과증’이 전부였다. 탈북민 이모(47)씨는 "행정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 안다"면서도 "그래도 한번 찾아왔으면 서운하진 않았을 것, 탈북민 정책이라는 게 매번 이렇다. 이슈가 있으면 반짝 관심을 갖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무관심"이라고 했다.

탈북민 모자가 숨지고, 지난달 안양에선 또 탈북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모두 한국에 정착한지 5년이 넘은 사람들이었다.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벽은 이들이 넘은 생사의 벽보다 높았다. 분향소에서 김씨는 "말투가 다르니까 바로 조선족이냐 물어요. 북에서 왔다 하면 그 때부터 바라보는 게 달라… 우리도 같은 국민인데"라며 "정착 초기엔 신경을 그래도 써주는데, 시간이 지나면 정말 의지할 곳이 없다. 갈 곳도 없어 고립된 기분"이라고 했다.

고향을 떠나온 이들은 추석날 이곳에 모여 추모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평소엔 임진각에서 치렀던 위령제도 같이 열 계획이다. 오는 21일엔 숨진 모자를 위한 탈북민장(葬)이 계획돼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13/20190913005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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