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노동신문 분석해보니]
'중국' '러시아' 언급은 늘어⋯"하노이 노딜 후 중·러 경사" "국제 제재망 이완"
日언급 늘고 美언급 줄어...협상 중인 美 대신 日 때려 내부 결집
'김정은' 언급 기사는 늘어⋯ 작년엔 장고, 올해엔 미사일 발사 지도 활발 영향 탓인 듯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9월 20일 백두산 장군봉에서 천지를 배경삼아 손을 맞잡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9월 20일 백두산 장군봉에서 천지를 배경삼아 손을 맞잡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실명 거론한 기사가 올해 들어 부쩍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노동신문 사이트 기사를 확인한 결과, 문 대통령을 실명으로 언급한 기사는 지난해 72건에서 올해 5건으로 급감했다. 문 대통령 이름뿐 아니라 '청와대' '서울' '남조선' 등 한국 정부 당국을 지칭하는 표현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을 실명으로 언급한 노동신문 기사가 상대적으로 우리측에 우호적인 논조였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들어 급랭한 북한의 기류가 확연하게 드러난 셈이다. 반면 '중국', '로씨야(러시아)' 같은 키워드는 지난해보다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중국·러시아에 대한 의존이 더 심화되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노동신문이 2018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문 대통령을 실명으로 언급한 기사는 72건이었다. 그러나 2019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 10일 현재까지 문 대통령을 언급한 기사는 5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로 파견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언급한 기사도 작년 21건에서 올해 1건으로 줄었다. 지난해 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한 기사는 대부분 김정은 또는 북한 고위급 인사가 문 대통령과 만나는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올해 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한 기사로는 지난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상황을 소개한 기사 1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등을 비난하면서 야권이 문재인정부에 대해 취한 입장이나 행동을 요약 소개한 기사 3건, 러시아 언론을 인용해 김정은과 문 대통령의 만남이 포함된 북한의 '빛나는 조국' 공연에 대한 반응을 소개한 기사 1건이 있었다.

북 노동신문에서 우리 정부를 언급하는 표현들도 감소 추세다. '청와대'라는 단어는 작년 129건에서 올해 27건으로, '남조선'은 작년 1113건에서 올해 644건으로 줄었다. '남조선 당국'이라는 표현은 작년 116건에서 올해 63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남조선 당국자'란 표현을 쓴 기사도 작년 25건에서 올해 5건으로 감소했다. 북한의 공식 대남(對南) 창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언급한 표현도 작년 50건에서 올해 8건으로 크게 줄었다. 지금까지의 추세라면 올해 연말까지 이들 남북관계 주요 키워드 관련 기사량은 작년 기사량에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작년은 평창 동계 올림픽에 북한이 참석하고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 간 세 차례 정상회담이 있어 문 대통령의 이름이 직접 거론될 기회가 상당히 많았다"면서 "반면 올해는 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이 거의 없었는데 남북 관계 경색의 여파"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보다 미국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점도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 관련 기사량이 크게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취하고 있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이 매체 언급량에서도 확인된다"고 했다.

다만 노동신문에서 문 대통령을 실명으로 언급한 기사가 줄어들었지만 그를 실명 비판한 기사도 없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은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쓰고, 안 좋을 때는 남조선 당국자라고 하는데, 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난하지는 않았다"면서 "북한이 나름대로 표현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도 "북한이 정말 한국을 봉쇄하려 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을 실명 비난했을 것"이라며 "미·북 관계가 잘 되면 북한은 다시 남북관계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노동신문에서 '중국'이란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올해 들어 현재까지 640건, '러시아'가 포함된 기사는 849건이었다. 작년에는 '중국'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기사가 813건, '러시아' 기사가 980건이었는데 연말이면 올해 관련 기사량이 지난해 그것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 본부장은 "갈수록 중국·러시아에 대한 경사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예를 들어 최근 노동신문을 보면 홍콩 문제 등에서 중국의 입장을 대놓고 두둔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중·러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란 것이다. 신 센터장은 "(중국과 러시아라는 키워드가 늘어난 것은) 한국을 활용해 주변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북한이 외교적 고립에서도 탈피했다는 방증"이라며 "이는 국제 대북 제재망이 부분적으로 허물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노동신문에서 '미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작년 1450건이었는데 올해는 현재까지 837건으로 다소 줄어드는 추세다. 연말이 되도 지난해 기사량에는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정 본부장은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이 어렵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대미 비판에 대해서 수위를 조절하고 조심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미국에 대한 언급 횟수가 상대적으로 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일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작년 1277건이던 것이 올해는 1131건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기사량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내부 체제 단속을 위해 외부와 긴장 관계를 조성하면서 일본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을 직접 비난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노동신문에서 '김정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올해 4812건으로 작년 1년치(4726건)를 벌써 넘겼다. 정 본부장은 "김정은이 작년에는 남북, 미·북, 북·중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대내 활동을 하지 않고 장고(長考)에 들어간 기간이 많았기 때문에 언급이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또 작년에는 경제·군사 활동도 많지 않았는데, 올해는 미사일 등을 벌써 10회나 쏘는 등 김정은의 군사 관련 활동도 늘어나 노동신문 등의 언급 빈도도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12/20190912004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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