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자 워싱턴포스트 1면에는 64세의 한국 노인이 누이동생을 만나 오열하는 사진이 실렸다. 제목은 ‘재결합의 눈물’. 50년의 피맺힌 한(한)이 일시에 폭발하는 그 표정, 주름살 하나마다 패인 그 아픔을 미국사람들이 어디서 볼 수 있었겠는가. 사연이 궁금한 사람들은 ‘반세기 이산(리산) 후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을 지 모른다.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그려낸 서울발 스케치 기사를 보고 나서야 미국 독자들은 알았을 것이다. 한국에는 1000여만명의 인구가 혈육을 지척에 두고도, 그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그리움에 몸서리치며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신문을 넘기면 또다른 기사가 있다. ‘한반도의 단지 실없는 얘기’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남한 언론사 사장단을 만난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달 전 미사일 개발 포기 용의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밝힌 것은 “웃으며 한 얘기일 뿐”이라고 말한 대목을 꼬집은 내용이다. 사설은 ‘북한 미사일 문제는 단기간에는 해결 난망’이라고 분석한 뒤, (미사일 위협은) 김정일의 웃음이 아니라 북한의 행동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썼다.

이 두 기사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 한쪽은 절절한 휴머니즘을 느끼게 하고, 다른 쪽은 미국의 국익을 철저히 따지는 차가움이 자리잡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은 러시아·중국과 함께 이 한반도의 비극의 잉태를 목격한 나라다. 38선의 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있다. 지금 이들 나라들은 한반도에서 출렁이고 있는 격정을 냉철한 머리로 재고, 분석하고 있다. 남북한의 가슴을 쥐어뜯고 있는 휴머니즘의 파노라마를 더욱 투철한 이성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출발은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가 되어야 한다. 85년 때처럼 1회성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진짜 ‘실없는 민족’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주용중 워싱턴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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