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8·15 경축사 하루만에 "삶은 소대가리도 웃는다"며 맹비난
정부, 北 발언에 '로우키' 대응하다, 이날 오후에야 "무례한 행위…유감 표명"
北 잇단 도발에도 "대화 분위기 흔들리지 않는다"는 文대통령 인식 문제란 지적 나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겠다"고 한 지 하루만인 16일 북한은 대남 전담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내세워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울릴 정도로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나타난 것은 고작 쥐 한 마리)이라며 문 대통령의 경축사를 깎아 내렸다. 북한은 이날 조평통 담화 직후 강원도 통천 북방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2발도 쏘았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언급한 평화경제 구상을 무색케 하려는 의도적 도발이란 평가가 나왔다.

조평통은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문 대통령이 전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평화 경제 구상'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하늘을 보고 크게 웃음)할 노릇"이라고 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특히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합 군사 연습과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의 전력 증강 계획 등을 거론하며 "북남 사이의 대화를 운운하는 사람의 사고가 과연 건전한가 하는 것이 의문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로 지칭하며 "정말 뻔뻔한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북쪽에서 사냥총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와 같은 모욕성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11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이 청와대를 향해 "겁먹은 개" "새벽잠을 설치며 허우적거린다"라고 표현한 것보다 비난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북한 외무성 국장 담화에 대해 당시 청와대에선 "쓰는 언어가 다르다"면서 "담화문의 진의가 무엇인지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 외무성 국장의 담화는) 결국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끝나면 (미·북) 실무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런 반응이 오히려 "북한에 '이 정도의 비난은 용인하겠다'는 시그널이 돼 사태를 점점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북한의 대남 도발에 현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전략적 인내'라고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대응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정부는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낮게 평가하며 대화 기조 유지에만 급급했다"면서 "북한이 아무런 부담없이 남쪽을 겨냥한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게 된 이유"라고 했다. 오냐오냐해 버릇을 잘못 들였다는 것이다.

조평통이 대남 비난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북한은 지난 6월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이후 주로 대외 선전 매체나 미·북 비핵화 협상 주무 부처인 외무성을 통해 대남 비난전을 펼쳤다. 북한의 이런 대남 비난 움직임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 대화가 좀처럼 풀리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발 작용"이라는 식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북한의 모든 기구는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의 의지를 따라 움직인다"면서 "북한의 행동에 대해선 '꿈보다 해몽' 식의 해석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조평통이 직접 나서 문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온 것은, 문재인 정권에 김정은이 던지는 경고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일 '김정은 동지께서 8월 10일 새 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하셨다'고 보도했다. 조중통은 무기 명칭이나 특성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발사 장면 사진만 여러 장 공개했다./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1일 "김정은 동지께서 8월 10일 새 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하셨다"고 보도했다. 조중통은 무기 명칭이나 특성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발사 장면 사진만 여러 장 공개했다./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북한의 원색적인 비난이나 미사일 도발에도 로우키 대응 기조를 보이고 있다. 김은한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통일부 정례브리핑에서 조평통 대변인의 담화에 대해 "남북관계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한다"면서 "남북정상 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합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조평통 담화는 보다 성숙한 남북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도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문 대통령의 전날 발언을 언급했다. 대통령의 통일정책 자문기구인 민주평통의 수석부의장으로 내정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분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에 대한 정부의 이런 미온적 대응을 두고 저자세 논란이 일자 통일부는 이날 오후에야 "북측의 담화 내용은 당국의 공식입장이라고 보기에는 도를 넘는 무례한 행위"라며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랄 수 있는 광복절 다음날, 문 대통령을 험담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대남 도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추진한 평화 프로세스의 근본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오히려 전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이전 상황과 달라졌다"며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큰 성과"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상황 인식에 대해 전문가들은 "남북 대화가 사실상 중단되고, 북한이 대남 도발을 일삼는 현재 상황을 지나치게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은 연일 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며 대남용 핵무기를 첨단화하고 완성해가고 있는 상황인데, 정부는 '평화'만 이야기하고 있다"며 "남북대화에 목을 메는 문재인 정부를 보면서 북한은 계속 주도권을 쥐기 위해 판을 흔들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계속 협력할 의사가 없다고 하는데도 문 대통령이 평화경제를 계속 거론하는 것도 북한의 반발을 불렀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남북 평화구상과 함께 통일의 정치·안보적 효과와 함께 통일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도 수치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북한 체제 보장을 강조했다. 하지만 남과 북은 시장경제와 폐쇄경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로 판이한 국가 체제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구상하는 평화경제는 개성공단 같은 제한적 남북 경협을 넘어선 전방위적 수준의 경협에 가깝다. 자신의 독재정권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김정은 입장에선 오히려 문 대통령이 말하는 평화경제 구상이 체제 안전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6/2019081603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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