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남북군사합의, 北미사일 발사한 '함남 호도반도'는 제외
문정인 靑특보 "북한은 우리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적대행위'로 봐"
전문가들 "北, 9·19 볼모로 韓군축 요구하며 對美 몸값 높이기 나서"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전날 함남 호도반도 일대에서 있었던 신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위력시위사격' 장면을 보도했다./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전날 함남 호도반도 일대에서 있었던 신형 단거리 탄도 미사일의 '위력시위사격' 장면을 보도했다./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함남 호도반도에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지도하면서 "남조선 당국자가 최신 무기 반입이나 군사연습과 같은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 빨리 지난해 4월과 9월과 같은 바른 자세를 되찾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를 위협하는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는 작년 4·27 판문점선언과 그 이행을 위해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를 준수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9·19군사합의는 육해공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인 상대에 대한 모든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토록 명시했기 때문에, 북의 미사일 발사는 9·19정신을 정면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9·19군사합의에 탄도 미사일에 대한 금지 규정은 없다"고 했다. 북한을 향해 '9·19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지 못한 것이다. 북이 지난 5월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정부는 "(9·19합의) 취지엔 어긋나지만 위반은 아니다"고 했다.

반대로 북한은 수시로 "한국이 9·19군사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 자료에 따르면 작년 9·19군사합의 이후 올 3월까지 6개월간 북한 매체들이 우리 측의 군사합의 위반을 주장한 건수는 총 122건이었지만, 우리 측이 북측을 향해 군사합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한 경우는 불과 몇 건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9·19합의의 허점을 이용해 한국 정부에 군축(軍縮)을 요구하고 자신의 몸값도 높이려 하고 있다"고 했다.

9·19군사합의서 1조 2항은 작년 11월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키로 하면서 "'동해 남측 속초 이북으로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의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번에 미사일이 발사된 함남 호도반도는 그 경계선인 강원도 '통천' 보다 50여km 북쪽에 위치해 효력에서 벗어나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미사일 발사 시설이 9·19 합의에서는 제외된 것이다. 지난 23일 북한이 공개한 SLBM(잠수함발사미사일) 3대가 탑재 가능한 신형 잠수함은 호도반도보다 더 북쪽으로 먼 함남 신포조선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9·19합의서 1조 3항은 고정익항공기의 비행을 동부지역의 경우 군사분계선으로부터 40km 이내에서 금지토록 정하고 있다. 항공기 비행 금지 규정이 '미사일'에 적용될지도 불확실하지만, 거리로도 이번에 미사일이 발사된 호도반도에는 구역이 미치지 못한다. 반면 우리 측은 9·19합의를 토대로 그간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를 철수하고 공중 감시 정찰 등 수준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합의서 체결 당시) 비핵화의 진전과 맞춰서 군사분야 합의를 했어야 하는데, 군사 합의를 통해 우리의 첨단 재래식 군사력만 묶어놨으니 북한이 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가 9·19합의에 근거해 북의 책임을 물으려면 (합의서 1조의) '육해공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는 총론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도 하고 있다. 실제 북은 이날 "(미사일 발사는) 남조선 군부호전 세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를 향해 적대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북한은 그러면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 중단 등을 요구했다.

F-35A 도입은 전임 박근혜 정부 때부터 결정돼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 사업이다. 또 지금 북한의 비핵화 상태로 한미훈련을 없애긴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 문정인 대통령특보는 "(북한은) 한국이 계속 미국에서 스텔스 전투기 등 최첨단 무기를 들여오는 것을 판문점 선언 등에서 약속한 '상호 간 적대행위 중단'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면서도 "북측이 비핵화에 구체적인 진전만 보여주면 유엔 (대북) 제재 완화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시설과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면 유엔 제재 완화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는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서 우리 측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대미 협상을 앞두고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교묘하게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펼치는 것"이라며 "앞으로 비핵화 협상에서 남측은 빠지거나, 소정의 역할을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미국에 실무협상을 하자는 신호인데, 미국을 대놓고 비난하면 협상을 할 수 없을테니 만만한 남측에 책임을 씌우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미북 대화의 초점이 '비핵화'가 아닌 '미사일 폐기'에 맞춰지면서 한국이 한반도 비핵화 중재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지난달 30일 남·북·미 판문점 회동 때 "2~3주 내 개최한다"고 했던 미·북 실무 협상에 3주가 넘도록 응하지 않고 있다. 한편 미국에선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격하시키는 발언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은 그저 작은 것들(smaller ones) 테스트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단거리 미사일이 아닌)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라며 실무협상이 앞으로 2주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26일자 1면 전체를 전날 김정은이 지도한 미사일 발사에 할애했다. /연합뉴스
북한 노동신문은 26일자 1면 전체를 전날 김정은이 지도한 미사일 발사에 할애했다. /연합뉴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26/2019072602258.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