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北 협상, 완전한 비핵화 아닌 대선 자랑거리 수준 그칠 수도"
美 북핵담당 "동결 f도 거론 안했다"는데 트럼프 정부는 아직 빅딜·스몰딜 의견 갈려
 

강인선 워싱턴지국장

'미국 정부가 북한이 핵보유국인 것처럼 대하고 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소장이 8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지난달 말 미·북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가 북한을 핵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루이스 소장은 트럼프가 판문점에서 공개적인 발언을 할 때 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했다.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후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미국에선 '북핵 동결론' '스몰딜 불가피설' '북한 핵보유국 묵인론'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애초 목표로 삼았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는 중간 단계에서 일단 잠정적 합의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적으론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목표로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 외교가와 싱크탱크에선 "트럼프 정부 내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단기적 성과를 얻기 위한 조정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북핵 협상 전략은 2020년 미국 대선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외교 문제는 미국 대선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는 아니다. 하지만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자신이 협상의 달인임을 보여줄 '역사적 성과'를 원할 수 있다. 또 내년 대선까지 북한이 미사일·핵 도발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갈 수 있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직 고위 관리도 최근 "트럼프는 대선 때 성과로 내놓을 수 있는 '중간 단계의 합의'를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워싱턴의 한 북한 전문가는 "트럼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관계에서 단기간에 통 큰 성과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 대선 일정을 고려하면 목표를 현실적으로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최근 한 행사에서 이전과는 달리 '유연한 접근' 방식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판문점 회동 직후인 지난달 30일 '미국이 새로운 협상에서 북핵 동결에 만족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로 '핵 동결론' 논란을 일으켰다. 판문점 회동 몇 주 전부터 트럼프 정부 내에서는 현상을 유지하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묵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핵 동결' 개념을 구체화해왔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개념이 트럼프가 당초 약속한 북핵 해결엔 훨씬 못 미치지만 선거 때 쏟아질 비판을 받아칠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비건 대표는 북핵 동결론을 강력 부인했다. 트럼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워싱턴 인사들도 "북핵 담당자들이 '동결(freeze)'의 'f'도 거론한 적 없다"고 펄쩍 뛰었다. 다만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기 위해 북한의 핵물질 생산을 일단 동결한다는 의미에서의 '동결' 개념은 논의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4일 한 칼럼에서 미·북에는 "'스몰딜'이 유일한 외교적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빅딜'은 김정은이 이미 하노이 회담에서 거부했고, 미 정보기관들이 김정은이 핵 포기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는 점을 감안하면 '스몰딜'이 유일하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이란 것이다.

켄 고스 미 해군분석센터(CNA) 국장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 정책은 현상 유지는 해주지만 비핵화로 이어지지 않고, 트럼프의 톱 다운 방식은 정상에선 작동하는 것 같지만 후속 회담이 이뤄지지 않아 미국의 대북 전략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미 언론과 전문가들이 목표를 하향 조정한 다양한 방안을 거론하는 것은 트럼프 정부 내부의 복잡한 논의 과정을 반영한다. 워싱턴의 한 한반도 전문가는 "트럼프 정부 내에 지금도 빅딜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단계적 접근 방식을 옹호하는 입장이 혼재하고 있는데, 아직도 명확하게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강경파 볼턴 보좌관과 협상파 폼페이오 국무장관·비건 대표가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는 설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최근 경질설이 도는 볼턴 보좌관은 이란, 북핵 문제 등에서 대통령의 뜻과는 다른 자신의 강경론을 주장하다가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반면 폼페이오·비건 팀은 트럼프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고 그대로 실현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한다.

북핵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외교관은 최근 "트럼프 정부는 북한으로부터 영변 핵 시설 플러스 알파, 그리고 로드맵을 받아내고 그에 대한 대가로 일부 제재 완화를 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영변 이상의 것을 받아냄으로써 과거 제네바 합의나 6자 회담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를 얻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0/20190710001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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