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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도 성균관대학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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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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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
일러스트= 안병현

며칠 전 대구 향교에 강연하러 갔다. 대구로 내려가는 길에 강연 장소가 향교 대강당이라는데 향교가 대체 어떤 모습이기에 대강당까지 있는 걸까 호기심이 샘솟았다.

영국에서 북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유교 문화를 접하고 신기한 적이 있었다. 중국 사람이 런던 시내 곳곳에 '공자학원'을 차렸는데 영국 사람들까지 가서 유교를 배우는 모습이 의아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공자·맹자를 연구하다니…. 나를 한국 사람으로 착각한 중국 사람 몇몇은 유교의 모국(母國)은 중국인데 어떻게 한국 지폐에 유학자의 초상이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한국 사람도 아니었고, 이황·이이도 알지 못했기에 그저 웃기만 했다.

궁금증을 가득 안고 대구 향교에 도착했다. 시내의 큰 부지에 전통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과 대강당을 갖추고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여러 종친회 대표들이 다가와 자신이 어느 성씨를 대표하는지 정중히 소개하고 향교 내 관계자들을 소개하는 모습이었다. 남한의 향교는 참관 대상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학문과 도를 닦는 하나의 조직체였다. 향교 관계자들은 남한에서는 유교가 종교로 분류되지만 향교는 성균관처럼 교육 시설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북한에도 향교가 있지만 문화유산일 뿐이다. 전통 조직이나 교육 시설은 아니다. 김일성은 북한에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 정책에 따라 모든 종교를 서서히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개신교나 가톨릭 등 서방에서 들어온 종교는 제국주의를 한반도에 끌어들인 매개물로 규정했고, 불교나 유교는 봉건적 잔재로 규정했다. 교회와 성당은 물리적으로 다 파괴했지만 불교 사찰과 향교 중 문화재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은 남겨 뒀다.

개성에 있는 성균관이 대표적이다. 조선 초기 한양에 성균관을 지으면서 개성 성균관은 향교로 지위가 낮아졌으나 북한은 한양 성균관보다 개성 성균관이 역사가 길다고 자랑한다. 1990년대 들어와 북한은 개성 성균관을 고려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대신 개성에 있던 경공업단과대학을 고려 성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서울에 성균관대학교가 있으니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고려 성균관대학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고려 성균관대 개교일도 고려의 국자감이 세워진 992년 9월 1일로 하고 있다. 남북이 같은 명칭을 쓰는 대학은 유일할 것이다. 두 대학은 1998년 자매결연을 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정치, 경제 철학, 과학기술 등의 학문으로 유명하다면 고려 성균관은 경공업 계열 학과로 유명하다고 선전한다.

중화 향교, 경성 향교, 길주 향교 등도 보존돼 있지만 대부분 북한 사람들은 향교와 사찰을 분간하지 못한다. 북한의 기독교 말살 역사는 잘 알려졌으나 유학자와 향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 TV 드라마 시리즈 '첫 기슭에서'를 보면 북한이 개신교·가톨릭과 불교·유교를 분리해 말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방 후 공산당이 청년 조직인 '민주주의청년동맹'을 설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교회는 미국 간첩의 소굴로, 목사는 미제의 고용 간첩으로, 목사의 딸은 아버지의 간첩 임무를 도와주는 방조자로 묘사된다. 목사와 딸은 인민의 심판을 받고 처형되거나 남한으로 도주하고, 향교는 당국의 정책을 수용하고 포섭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북한은 유교의 충(忠)과 효(孝)를 봉건 군주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1970년대 세습 구조를 만들면서 당 정책에 충과 효를 넣었다. 마르크스 레닌 사상에 유교와 기독교의 일부를 한데 녹여 국가 운영의 철학으로 주체사상을 만들었다. 김일성은 개성의 성균관을 찾아가 고려박물관으로 승격시킬 것을 지시했고, 지방의 일부 향교들이 문화재로 등록됐다. 북한에 일부 향교가 문화재로 남아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남북 교류를 통해 북한의 향교도 민족 유산으로 복원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1/20190621027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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