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 안병현

지난주 일요일 지인들과 함께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에 정차가 너무 심해 물어보니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했다. 무슨 날인지 이해되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석가모니의 탄생일이었다. 그날 저녁 TV에서 서울 조계사 등 전국 사찰에서 '봉축법요식'을 봉행한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불교 행사와 관련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종교는 한국에 와서 내가 제일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다. 서울 중심 조계사에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옷을 단정히 입은 신도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낯설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다.

한국 사찰에 많이 가보았는데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평화로워 부처님의 모습까지도 북한 부처님보다 온화해 보였다. 북한에는 보현사, 광법사, 안국사 등 사찰이 전국에 60여 개 있다. 서울 시내에만 58개의 전통 사찰이 있다는 한국에 비해선 굉장히 수가 적다. 성격도 많이 다르다. 북한에서 사찰은 불상을 모시고 승려가 거주하면서 불도를 닦고 불교 교리를 설파하는 종교 시설이 아니다. 민족 유산, 문화재에 가깝다. 북한 당국은 교회와 성당에는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하지만 사찰만은 주민은 물론이고 외국 관광객에게도 개방하고 있다.

당국에선 스님 300여 명이 있고, 불교 신도도 1만여 명 된다고 선전하지만 종교를 철저히 통제하는 북한에서 실제 신자가 몇 명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승려는 북한 노동당에서 파견한 종교계 일꾼이다. 대외적 교류를 위해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부에서 양성한다. 대부분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대처승이며 수행을 목적으로 독신 생활을 하는 스님은 없다. 사찰로 출근하는 식이다. 평상시에는 양복에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다니다가 한국이나 외국에서 대표단이 오면 검은 예복을 입고 그 위에 붉은 장삼을 걸친다. 북한은 외국인들에게 승려들이 절에서 불공도 드리고 일부 신도 집에는 불상도 봉안되어 있다고 선전하나 사실과 다르다.

정권 수립 초기에 불교 활동을 말살시켰던 북한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대남 사업에 불교를 활용하기 위해 규제도 완화하고 사찰도 많이 복구했다. 결국 북한에서 불교는 하나의 종교라기보다는 그 종교가 관리하는 유적과 유물 성격이 짙다.

김일성은 불교 교리에서 '착한 행동'을 하면 죽은 다음 극락세계에 가서 행복을 누린다고 하였는데 북한 주민들은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 땅에 '인민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힘껏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북한은 남쪽에서 불교 대표단이 올 때면 평양 광법사나 묘향산 보현사에서 불교 행사를 진행하고 노동신문 등을 통해 그 내용을 보도한다. 하지만 기사에 나오는 불교 용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지금까지 부처님 오신 날을 북한에서 기념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뜻밖에 5월 12일 자 노동신문에 불교 사찰인 안국사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물론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나라 옛 건축술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의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잘 보존·관리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우연히 남한의 '부처님 오신 날'에 맞춰 이런 기사를 실은 것은 아닐 테다. 분명 남쪽을 의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묘향산 보현사에는 팔만대장경 보존고가 있다. 월북한 국어학자 홍기문 선생이 주도해 고려팔만대장경 해제본을 발간했다. 평양외국어대학 중어과에 다닌 내 친구 2명도 1970년대 말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4년 동안 고대 힌두어를 배워 와서 팔만대장경 번역에 기여했다. 통일되기 전 남북의 팔만대장경이라도 빨리 합칠 수는 없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7/20190517020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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