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아버지가 나오셨을까?’ ‘내가 가족들의 얼굴을 알아 볼 수는 있을까?’

평양을 찾은 100명의 남측 이산가족은 15일 오후 5시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려호텔 2층과 3층에 마련된 단체 상봉장에 들어섰다. 30분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북측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고 긴장된 표정이었다.

피는 속일 수 없는 걸까…. 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첫 눈에 가족들을 알아봤다.

“여보!”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최경길(79)씨가 북한의 처자식을 끌어 안는 순간 긴장은 사라지고 상봉장은 연쇄적으로 눈물바다로 변해갔다. 여기저기서 50년간 참아왔던 설움이 터져나왔다.

이미 흰머리가 성성한 남쪽의 딸과 북쪽의 아버지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부둥켜안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형제끼리, 오누이끼리, 그리고 남남이 된 줄만 알았던 부부끼리 50년 한을 한꺼번에 풀려는 듯 흐느꼈다. “그동안 너무 울어 눈물도 말라버렸다”던 박관선(69)씨도 가족들의 생존을 확인하며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오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오빠를 기다렸어요. ” “오빠가 죽었다는 생각에 내가 대신 제사를 지냈어요. ” “여보,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시요.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그리고는 조카의 안부도 묻고, 처음 보는 가족들의 어깨도 어루만지며 충혈된 눈에 비로소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남쪽에서 간 사람들은 미리 준비해 간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고, 여기저기서 선물이 오가기도 했다. 북쪽의 아내를 위해 금반지를 꺼내고, 자기 이름을 새긴 시계 등을 내놓기도 했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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