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강화 국면서 입장 돌변, 철회할 내용이 뭔지 불명확
워싱턴도 국제사회도 혼란… 일각선 '김정은 달래기' 분석
 

강인선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트위터를 통해 갑자기 "대규모 추가 대북 제재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후 워싱턴은 혼란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입장 전환이야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엔 '돌발성'에 '부정확성'까지 겹치면서 혼란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재무부가 오늘 기존 대북 제재에 대규모 제재를 추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나는 오늘 이 추가 제재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쓴 '오늘(22일)' 재무부가 발표한 추가 제재는 없었다. 이 때문에 미 언론과 전문가는 물론이고, 행정부 내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철회하라고 지시한 추가 제재가 무엇인지 일대 혼란이 일었다. 전날(21일) 재무부가 발표한 중국 해운사 2개에 대한 대북 제재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22일) 재무부가 추가로 발표할 제재'인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트윗은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보였던 입장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행정부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북 제재 강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듯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달 초 "미국의 최대 압박 작전이 계속될 것이고 김정은에게 진짜 충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전용 헬기 ‘마린원’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대북 추가 제재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전용 헬기 ‘마린원’에 오르기 전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대북 추가 제재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트럼프의 이날 트윗으로 하노이 회담 이후 대북 정책의 핵심처럼 여겨졌던 대북 정책의 중심축이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북 제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행을 주도했던 미국 대통령이 스스로 추가 제재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트럼프가 제재 완화에 매달리는 김정은에게 유화 메시지를 보내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에서 '철회하라고 지시한 대북 제재'가 무엇인지는 만 하루가 지나도록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보수 성향 평론가인 빌 크리스톨은 전날 재무부가 발표한 제재라는 전제에서 "재무부의 결정을 뒤엎는 것이자 더 중요하게는 자신의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에게 창피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조차도 불분명하다. 이 돌발적인 정책 변경에 대한 백악관의 설명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세라 샌더스 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좋아하며, 추가 제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을 뿐이다.

미 언론들은 이날 오후 늦게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대규모 추가 대북 제재'는 전날 이뤄진 제재가 아니라 곧 발표될 예정이었던 추가 제재를 의미한다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가 조만간 대북 추가 제재를 발표할 계획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트위터로 그 계획을 취소시켰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재무부가 오늘 기존 대북 제재에 추가적 대규모 제재를 더한다고 발표했다’면서 ‘나는 오늘 이런 추가 제재의 철회를 지시했다!’고 적었다. 이 ‘오늘 재무부의 제재 발표’란 표현 때문에 미국은 아수라장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재무부가 오늘 기존 대북 제재에 추가적 대규모 제재를 더한다고 발표했다’면서 ‘나는 오늘 이런 추가 제재의 철회를 지시했다!’고 적었다. 이 ‘오늘 재무부의 제재 발표’란 표현 때문에 미국은 아수라장이 됐다. /연합뉴스

요즘 워싱턴의 북한 관련 최대 관심사는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모라토리엄(실험·발사 유예) 철회 여부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등의 움직임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대북 추가 제재 철회 트위터는 북한에 대한 선제적인 입장 표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국면 전환용'이자 '북한 달래기용'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직후 트럼프가 추가 제재 철회를 결정한 점도 이 같은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트럼프가 대북 추가 제재 철회 트윗을 날린 22일 미 행정부는 완전히 혼돈 상태였다. 대통령의 즉흥적인 정책 전환에 대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전날 대북 제재를 발표했던 재무부는 트럼프의 트윗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묵묵부답이었고, 국방부는 백악관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마치 워싱턴의 대북 정책 기능이 마비된 분위기였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백악관 내에서도 주말 내내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서 "누구도 이 상황을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했다.

트럼프의 두 문장짜리 트윗이 미국의 기존 대북 제재 정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미국이 추가하려던 대북 제재가 과연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외교 정책이 이런 식으로 돌변할 수 있다면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약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대북 제재의 틀을 만들고 이끌어온 미국의 리더십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트윗은 그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가장 중요한 지렛대는 대북 제재라는 미국 정부의 기본 입장을 흔드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느슨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입장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대북 제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제재 철회 트위터 메시지를 쓰기 전날엔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할 때'라는 입장도 트위터로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핵심 외교 정책 입장 을 트위터 메시지 하나로 급변시키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 정치인은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에 더 이상 외교 정책은 없다'고 썼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도 23일 트위터에 '국가 안보(정책 결정) 과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진짜 위기가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썼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5/20190325002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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