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한국, 北주장을 지지"
AP "文대통령 중재 역할 의문"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미가 대북 정책을 놓고 연일 엇박자를 내자 주요 외신들이 '불화' '이견' '마찰' 등의 표현을 쓰며 한·미 관계의 이상 기류를 우려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편을 든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4일(현지 시각) '북한의 핵 제안을 긍정 평가한 문(文), 트럼프와 결별하나'란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에서 나온) 북한의 영변 핵 시설 폐기 제안을 '불가역적인 단계'라고 긍정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갈라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이 주장한 '부분적 제재 해제' 표현을 쓰며 "(문 대통령이) 대북 제재로 중단된 남북 간 협력 사업을 진전시킬 것을 요청했다. 북한 주장을 지지한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공화당 존 호븐 연방 상원의원(노스다코타주·왼쪽)과 그의 아내 마이키 호븐(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공화당 존 호븐 연방 상원의원(노스다코타주·왼쪽)과 그의 아내 마이키 호븐(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대학풋볼 FCS 리그에서 우승한 노스다코타 주립대 선수들과 호븐 의원 부부를 백악관에 초대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 회의에서 "(하노이 회담에서 미·북 간) 부분적인 경제 제재 해제가 논의됐다"며 "남북 협력 사업을 속도감 있게 준비해달라"고 했다. 영변 핵 시설 폐기와 관련해선 "북한 핵 시설의 근간인 영변 핵 시설이 미국의 참관·검증하에 영구 폐기되는 게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해법에 관한 미·북 간 인식 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는 미 조야(朝野)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AP통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2차 정상회담 결렬로 문 대통령이 '김정은이 핵무기 폐기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다'고 주장한 것과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에 의문이 든다"며 "문 대통령의 부분적 제재 완화 주장은 제재를 중요한 대북 지렛대로 여기는 미국과 이견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앞서 미국은 "북이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해 회담이 결렬됐다"며 "(북이 제안한) 영변 핵 시설 폐기는 '매우 제한적 양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문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 바로 다음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 경협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며 "이 시설들은 북한에 외화를 공급하는 곳으로, 재개를 위해선 미 재무부와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고, 4일엔 9개월 만에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 회의에서 남북 협력 사업의 '속도감 있는 준비'를 주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영변 핵 시설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 시설은 매우 크지만 충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한·미 간 인식 차를 부각시켰다. 통신은 "북한이 핵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다른 비밀 시설에 의존하면서 최근 수년간 영변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고도 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영변은 북한의 유일한 우라늄 농축 시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의 폐쇄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종료 신호는 아니다"라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문 대통령이 중재자로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남북 경제 협력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일 경우 한·미 간 불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최우선시했다'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핵 담판을 깨고 나온 것을 긍정 평가한 언론 사설과 전문가 발언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인 뉴욕타임스(NYT)의 '트럼프는 걸어나감으로써 승리했다'는 제목의 사설, 보수 성향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트럼프가 김정은을 밟아버리다(walk on)'는 제목의 사설 등을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5일 더불어민주당 연석회의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현지 시설 복구를 위한 사전 준비 등 단계적 접근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한반도 비핵화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남북 호혜적 사업"이라고 했다. 전날 NSC 전체 회의에서도 조 장관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을 마련해 미국과 협의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김승 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북한이 대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의도겠지만, 자칫 '북한 편만 든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라고 했다.

한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국가안보 보좌관을 시켜 (비핵화 조치) 문턱을 높여 북한도 제재 해제를 세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회담이 결국 결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볼턴 보좌관)를 보면 인디언을 죽이면서 조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가 잘했다고 정당화하는 서부영화의 백인 기병대 대장이 생각난다"면서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대북 유화정책을 주도해 '햇볕정책 전도사'로 불렸고, 현재 한반도평화포럼·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금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 경협이 아니라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도출하는 데 주력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협상장으로 나온 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가동됐기 때문"이라며 "우리 정부가 앞장서 제재를 흔들며 미국과 엇박자를 내면 북핵 협상은 물론 한·미 동맹에도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문재인 정부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북한 경제 발전이 아닌 비핵화라는 점을 명심하고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대북 제재에 완화 조건이 있지만 북한은 그러한 조건 근처에도 가지 못한 상태"라며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실질적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제재 완화·해제라는 보상을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6/20190306001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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