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美北정상회담] 美北협상, 무슨 말 오갔나
 

"하노이에서 북한은 상당히 터프하게(toughly·거칠게) 협상에 임했다."

미 정부 소식통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만찬이 열리던 27일 저녁 하노이에서 본지를 만나 이번 미·북 비핵화 협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북측이 회담 직전까지 제재 완화를 강하게 요구하며 미측의 비핵화 압박에 맞대응했다는 얘기다. 이날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미·북 정상의 첫 하노이 대면에서도 양측 대표단은 팽팽한 분위기 속에 북한 비핵화 조치와 미국 상응 조치에 대해 의견을 일부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견례 및 친교 만찬'이라기보다 사실상 '업무 만찬'에 가까웠다는 분석이다.

◇비핵화 협상 최후 진통

미·북 대표단은 이날 저녁 1시간 35분간 열린 만찬에서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환담을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날 비핵화 협상을 의식해 '뼈 있는' 발언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 등 비핵화 조치와 종전(終戰) 또는 평화선언, 제재 완화 등 상응 조치를 놓고 치열한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260일만의 악수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미·북 정상회담 첫날인 27일 오후(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에서 만나 만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60일만의 악수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미·북 정상회담 첫날인 27일 오후(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에서 만나 만찬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위대한 지도자로 추켜세우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어 "북한이 (경제적) 잠재력을 지녔고 굉장한 미래를 가질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비핵화에 나설 것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이에 앞서 응우옌푸쫑 베트남 주석과의 회담에선 "베트남은 훌륭한 생각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북한의) 진짜 본보기"라고 했다.

이에 김정은도 "모두가 반기는 결과가 나올 것을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또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민과 노력,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만찬에선 구체적 비핵화 방안과 상응 조치를 놓고 입장차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과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은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폐기를 넘어서는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추가 비핵화 조치'를 원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찬엔 김정은 동생인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아닌 '핵 전문가' 리용호 외무상이 나왔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 위원장이 첫 만찬부터 본게임으로 간주하고 치밀하게 협상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베트남 주석·총리와 연쇄 회담을 가진 데 반해 김정은은 숙소에서 두문불출하며 회담 준비에 집중했다. 전날 하노이 입성 후 첫 일정도 실무 협상팀과의 '전략 회의'였다. 베트남 공식 방문과 산업 현장 시찰도 모두 회담 이후로 미뤘다.

◇28일 정상 간 대좌에 달렸다

미·북 정상이 28일 발표할 '하노이 선언'에는 북한 비핵화 조치로 영변 핵시설 원론적 폐쇄와 핵물질 생산 중단 조치가 담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미측 상응 조치로는 종전(終戰) 또는 평화선언과 평화체제 논의 개시,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미군 유해 추가 송환 등이 담길 가능성이 크다.

미측은 영변 핵시설의 신고·사찰·검증과 영변 외 추가 핵·미사일 시설 폐기, 비핵화 로드맵 등을 요구했지만, 북측은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을 위한 제재 완화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하노이 실무 협상 후 측근들에게 "협상이 어려웠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오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가지려다 돌연 취소했다. 이를 두고 '협상이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북한을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왔다.

'영변 핵시설을 폐쇄한다'는 원론적 합의 외엔 이견을 크게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정상 간 담판으로 공이 넘어가면서 '스몰딜'에 그칠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정은이 막판까지 제재 완화를 요구하며 시간에 쫓기는 트 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맞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럴 경우 낮은 수준의 추상적인 '하노이 합의'에 그칠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선 "김정은이 28일 실무 협상 결과를 뛰어넘는 카드를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 정상의 만찬 후 27일 밤 비건-김혁철 또는 폼페이오-김영철 간 협상 라인이 가동돼 막판까지 합의문 초안을 조율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28/20190228003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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