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장벽 예산 삭감 등 이슈마다 野·언론과의 여론전서 연전연패
보수층 돌아서면 시청률 낮은 프로 폐지하듯 슬그머니 정책 접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협상의 달인'을 자처했던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이 핵심 국정 이슈 싸움에서 잇따라 패하면서, '포기와 굴복의 달인'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상대에 대한 막말과 궤변, 협박과 모욕으로 판을 흔드는 덴 성공하지만, 정부와 의회 내 우군을 확보하지 못한 채 섣불리 나섰다가 야당·언론과의 여론전에서 밀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를 '협상력 개인기'로 돌파하겠다던 아웃사이더 대통령이 2년 만에 정교한 민주주의 시스템의 포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민주 양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했던 국경 장벽 건설 예산을 4분의 1 이하로 축소하는 안에 지난 11일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행복하지 않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협상 결렬로 인한) 셧다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합의안을 받아들일 것임을 시사했다.

당초 57억달러 예산을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절반으로 깎고 타협하면 어떠냐"고 하자 고함을 질렀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25억달러 제안도 걷어찼으며, 1월 양당의 16억달러 합의안에 격분해 정부 셧다운을 선포했다.

그러나 '공무원 인질극'으로 불린 셧다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지지율 최저치를 찍자 결국 그보다도 훨씬 후퇴한 13억7500만달러란 계산서를 집어들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으로선 최악의 거래인 셈이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핵심 공약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자 언론들은 '패배' '포기' '굴욕'이란 단어를 쏟아내며 트럼프와 민주당 간의 '국경 장벽 전쟁' 결과를 평가했다. 트럼프의 저서 '협상의 기술'을 빗대 "철회의 기술"(타임) "굴복의 기술"(이코노미스트)이란 말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표심을 노리고 미국과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다가, 어려운 고비에 맞닥뜨리면 발을 빼는 패턴은 계속 반복돼 왔다. 장관·참모 경질이나 트위터 막말처럼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제외하곤, 의회 반대나 사법 권력의 제동에 걸려 자신의 뜻대로 끝까지 밀어붙인 정책을 찾기 힘들 정도다.

그는 불법이민자 아동들을 격리 수용했다가 '인권 무시'라는 비난이 일자 철회했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 의무 가입) 폐지 공약에 보수 노년층의 반발이 커지자 중간선거 직전 "오바마케어를 더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리얼리티쇼 진행자 출신인 트럼프가 중도층이나 보수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하면 시청률 낮은 TV프로를 폐지하듯 정책을 접은 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무력해 보이는 것, 인기 없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했고, 복스는 "신념·원칙이 아닌 기회주의"라고 했다.

여론 반응이 더딘 대외 이슈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동맹과 상의 없이 '시리아 즉각 철군'을 선언했다가 보수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시한을 무기 연장했다. 그 이유로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지율이 낮고 특검 수사, 탄핵 요구 등으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트럼프가 (탄핵승인권을 쥔) 여당 상원의원들의 이탈을 방치해선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장벽 예산 축소도 공화당이 트럼프에게 수용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애틀랜틱은 "트럼프는 여론의 냄새를 맡는 동물적 직관은 뛰어나지만 그걸 밀어붙일 인내심이나 전략이 없다"며 "러시아·중국·북한 등 지도자들에게 '트럼프는 적당히 구슬리면 되는 호구'가 됐고, 대통령직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했다.

시사지 타임은 "트럼프의 '철회의 기술'은 결과와 상관없이 자신이 양보하거나 패배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며 금세 다른 이슈로 골대를 옮기는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보수층을 사로잡았던 '반(反)이민' 이슈에서 발을 빼고, 2020년 재선을 목표로 '사회주의와의 전쟁'으로 전선을 옮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4/20190214002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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