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북핵협상 26년] [3] 제재와 완화의 악순환
2005년 北이 위조지폐 제작하자… 美, 北통치자금 BDA 계좌 동결
당시 김계관 "피 얼어붙는 느낌"
 

이달 말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일부 비핵화 조치의 대가로 미국에 제재 완화·해제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작년 초부터 전방위 평화 공세에 나선 배경을 짐작하게 해준다. 북한은 과거에도 제재로 인한 고통이 극심해지면 도발을 멈추고 대화의 손짓을 하곤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해제'를 원칙으로 삼아 왔지만, 최근 대북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는 등 외교가에선 "제재 완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섣부른 제재 완화는 북한 비핵화에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도발→제재→대화→제재 완화' 되풀이

1950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던 북한이 '제대로 된 제재'의 쓴맛을 본 것은 2005년이다. 미국은 북한이 위폐를 대량 유통하는 등 금융 범죄를 저지르자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전격 동결했다. 김정일 통치 자금 2500만달러가 묶이자 처음에 북한은 6자회담을 보이콧하고 장거리 미사일(대포동 2호)을 쏘는 등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결국 2007년 1월 베를린 극비 회동을 통해 미국에 BDA 제재 해제를 사정해야 했다. 당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피가 얼어붙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뒤로 제재 완화를 얻어낸 북한이 일정 시간 후 도발을 재개하면 국제사회가 제재를 다시 부과하는 '북핵 치킨게임'이 본격화했다. 북한은 얼마간 버티다 임계점에 이르면 대화로 돌아섰다. 2012년 미국과의 '2·29 합의'가 대표적이다. 당시 북한은 2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2009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2010년) 등으로 안보리 결의 1874호, 한국의 5·24 제재 등을 얻어맞던 상황이었다. 한동안 버티던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선 것을 두고 "김일성 100회 생일(2012년 4월 15일) 잔치를 앞두고 '우호적 대외 환경 조성'과 외화 확보의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제재 이완하면 복구 불가… 신중해야"

전문가들은 작년 초 시작된 이번 대화 국면 역시 과거 패턴과 유사하다고 본다. 북한은 2013~2017년 핵실험을 4차례 강행하고, 탄도미사일을 60여발 쏘아 올렸다. 그 결과, 고강도 안보리 결의 6건이 채택됐다. 이 결의들은 북한의 정상 교역 자체를 불법화해 돈줄을 틀어막았다. 북한의 대중 수출이 2013년 정점(29억1200만달러)을 찍고 매년 급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작년 대중 수출은 2억1000만달러로, 2013년의 7% 수준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제재에 이력이 난 북도 경제 봉쇄 수준의 제재 앞에선 정책 전환이 불가피했다"고 했다. 김정은이 평창올림픽 참가 의향을 밝히며 전방위 평화 공세의 포문을 연 작년 신년사에서 '최악의 난관' '엄혹한 도전'을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핵·경제 병진 노선 복귀를 시사하는 '새로운 길'을 언급하며 제재 해제 요구를 노골화했다.

외교가에선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성과 도출을 위해 제재 완화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 장은 11일 "전례 없는 고강도 제재가 없었다면 북을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 없었다"며 "북 비핵화의 마지막 기회이므로 제재 해제만큼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 전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은 "제재는 한번 이완되면 복원이 불가능하다"며 "비핵화 촉진을 위해 제재를 풀어주자는 궤변에 속으면 자칫 '제재의 공든탑'만 무너지고 비핵화는 멀어질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2/20190212002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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