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의 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지난해, 러시아가 북한에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원자력발전소 제공을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 시각)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10월 말 미·북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이같은 내용의 비밀 제안을 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직접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모든 부산물과 폐기물은 러시아로 돌려보내는 방안을 제안했다. 북한에 새로운 에너지원을 제공하면서도 발전소를 통해 핵무기를 제조할 위험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5월 31일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러시아 외무부 트위터

미 정보당국은 지난해 말 러시아의 제안에 대해 알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제안은 1994년 미국과 북한이 북핵 동결과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잔류를 조건으로 경수로 등을 지원하는 ‘제네바 합의’ 청사진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 방안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지정학적 위기의 해결사로 인정받고, 동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연계를 얻어내려 한다고 분석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러시아는 북한과 관련해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북한에서 에너지 지분을 추구한 것이 처음이 아니다"며 "러시아는 경수로를 제공해 돈을 벌고, 동아시아 에너지 연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교관은 "러시아가 다시 국제 게임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일 수 있다"며 "러시아는 ‘북핵으로부터 세계를 구했는데 왜 제재가 계속되나’라는 입장을 내세울 수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러시아의 제안에 대해 어떤 대처를 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제안에 대해 협상을 진행중인지, 또는 이 제안이 미·북 회담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도 분명하지 않다. 미 국무부와 백악관, 중앙정보국(CIA),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관 등은 이 사안에 대한 WP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미국 정부 관리는 WP에 "CIA는 러시아 원자력발전소에서 무기화할 수 있는 부산물은 극히 소량만 만들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비전통적인 정치 성향을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러시아가 미·북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차 석좌는 "과거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플루토늄 생산 시설 해체를 대가로 경수로를 제공해줄 것을 제안한 당시 이를 거부했다"며 "핵에너지를 포함하지 않는 에너지 대책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차 석좌는 또 북한과 관계를 과시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중국도 러시아의 제안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30/20190130016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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