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적인 적폐 청산은 '政敵 박멸' 수단으로 타락
권력 입맛에 맞춘 法 남용이 공화국의 근간 뒤흔들어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새해가 밝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결의에 찬 신년사를 선보였다. 2019년을 "함께 잘사는 사회로 가는 첫해"로 만들겠다고 한다. 청와대 대신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신년회를 열어 '사람 중심 경제'를 강조했다. 구체적 성과에 목마른 민심을 의식하는 듯 보인다. 민의에 대한 반응성이 민주정치의 요건이란 점에서는 진일보했다. 함께 잘사는 사회로 가는 중심에 "공정과 일자리가 있다"는 대통령의 말도 맞다.

하지만 일자리와 공정이야말로 문 정부의 치명적 급소다. 모든 통계는 문재인 정부가 좋은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지속 가능한 좋은 일자리는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만든다는 사실을 문 정부는 인정하길 꺼려 한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 일자리 참사와 경제 쇠락의 재앙을 낳는 걸 보면서도 완강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정성에서 문 대통령이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공평해야 할 법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경우가 너무 잦다. 정의로워야 할 적폐 청산이 정적(政敵) 박멸의 수단으로 타락했다. 문 정부의 불공정한 권력 행사는 원한을 키우고 사회 통합을 파괴한다. 살아 있는 권력의 입맛에 맞춘 법의 오·남용이 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문 대통령의 평화 정책은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다.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중재자 문재인'의 성가(聲價)가 상종가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한반도 2국(國) 체제의 필연성을 시인한다고 해도 김정은 신년사에서 드러난 북한 비핵화의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올해 한반도 핵 정치가 현란한 평화 담론의 성찬(盛饌)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지만 폭력 독점의 주체인 두 국가의 대립적 병립이라는 한반도 상황의 본질엔 변함이 없다. 문 대통령 소망대로 "평화의 흐름이 되돌릴 수 없는 큰 물결"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은 국가 이성에 투철해야 한다.

비굴한 평화를 갈구하는 문약(文弱)은 오히려 전쟁을 부른다. 무장 평화만이 진정한 평화를 담보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유럽 전역을 파죽지세로 휩쓴 전성기의 히틀러조차 침공을 포기한 스위스의 힘은 영세중립조약에서 나오지 않았다. 철옹성 같은 국민개병제의 국방력과 결연한 국민 의지가 나라의 번영과 자유를 지켰다. 미국이 북한 핵 보유를 묵인한 채 미·북 평화협정으로 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문 정부가 대비하고 있는지 정녕 의문이다. 앞으로 반세기는 지속될 미·중 세계 패권 경쟁의 대혼란 속에서 국가 이성의 중요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때 이른 조락(凋落)은 한국 정치의 놀라운 역동성을 보여준다. 보수가 폐족(廢族)이 된 게 불과 2년 전이건만 문 정부의 총체적 실정(失政)이 보수를 재생시키고 있다. 하지만 감성적 반사(反射) 정치는 정치를 퇴화시킬 뿐이다. 진보를 자임한 문 정부의 실패가 극우 포퓰리즘을 낳는 거대한 퇴행조차도 배제하기 어렵다. 극단적 감성 정치로 민생과 국가 백년대계 전체를 황폐화하는 수구 좌파와 수구 우파의 적대적 공존보다 공화정에 해로운 것도 드물다.

문 대통령의 '함께 잘사는 사회'는 공화국을 가리키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공공성(Res Publica)이 생명인 공화정(Republic)에서 정의의 법과 성숙한 시민 의식은 필수다. 시민들이 무제한의 방종이 아니라 정의로운 법 '안'에서 자유롭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따라서 문 정부의 적폐 청산처럼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법은 나라의 근간을 무너트린다. 공정한 법을 실행하는 자유로운 공화국만이 민주 시민의 조국(祖國)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의 반대말은 타국이 아니라 폭정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이다. 1919년 3월 방방곡곡에서 떨쳐 일어난 온 겨레의 뜻을 담아낸 게 임시정부 초대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1919년 4월 11일)이다. 헌장은 '제국'을 폐기해 '민국'을 선언했고,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임을 밝혔다. 우리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렇게 경이로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꿈을 그 엄혹한 시절에 선포하고 실천했다. 결국 공화정은 나라의 얼이자 정치 공동체를 이끄는 최강의 힘이다. 문재인 정부 같은 과도기적 정권이 역사 해석권을 독점하고 공화정의 이상을 전횡하는 건 참람(僭濫)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영원하다. 무능한 데다 오만하기까지 한 정권의 득세와 추락도 순간이다. 권력은 역사의 과객(過客)에 불과하며 역사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3/20190103030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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