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운두령로에는 이승복기념관이 있다. 기자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약 14㎞ 떨어진,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학교에서 매년 이승복기념관으로 견학을 갔다. 북한 무장공비가 당시 아홉 살이던 이승복 어린이와 그 가족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상황을 묘사한 영상이 나올 때마다 엄숙해지곤 했던 주변 분위기가 생각난다.

언제부턴가 소년이 공비 앞에서 외쳤다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은 실은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였다는 우스갯소리로 바뀌었다. 반공의 상징이던 소년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조차 농담 소재로 삼는 ‘거짓’ 이야기의 주인공이 됐다. 이승복 사건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승복 일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빠졌다. 초등학교 운동장 곳곳에 세워졌던 이승복 동상도 하나둘 철거되기 시작했다.

노옥희 경남 울산시교육감이 지난달 울산 일부 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이승복 동상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시대에 맞지 않을 뿐더러 사실관계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이승복 사건은 2006년과 2009년 대법원에서 허위가 아닌 사실로 판결났다. 동상 철거 지시에 반발이 일자 노 교육감은 "사실관계를 떠나서, 4차 산업 시대에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승복 동상은 자꾸 뒤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 철거를 문의했다"고 했다.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역사도 바꾸겠다는 의미인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위인이라 부르며 그의 서울 방문을 환영한다는 ‘위인맞이환영단’이 발족 기자회견을 했다. 이 단체 단장은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라고 외쳤다.

그 일주일 전에는 ‘백두칭송위원회’라는 단체가 광화문에서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를 열었다. ‘서울시민환영단’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 남북 정상회담 환영 청년학생위원회’ 등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한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지지하는 친북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옛 서울시청인 서울도서관에 내걸린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의 사진을 한동안 봐서인지, 서 울 중심에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이런 행사가 이젠 그다지 낯설지도 않다.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서울 답방을 약속한 만큼 그가 실제로 온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남북 화해 분위기를 내세워 한쪽 면만을 치켜세우며 미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김정은이 이복형을 암살하고 고모부를 처형하고 주민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자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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