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합의로 무인기 무력화 논란
 

최경운 논설위원
최경운 논설위원

1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9·19 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10~40㎞ 이내에서 항공기 비행이 금지됐다. 비행 금지 대상에는 무인 정찰기(UAV)도 포함됐다. 이런 가운데 이달 초 우리 군의 사단급 무인 정찰기 1세트(비행체 4대)가 처음으로 실전 배치됐다. 하지만 비행금지구역 확대로 인해 사단급 무인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두고 "공격용 무기는 줄이되 감시·정찰은 확대한다는 군비 통제의 초보적 원칙을 위배해 군사적 안정을 더 위태롭게 했다"는 예비역 장성들의 우려와 "한·미 연합 정찰 자산으로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국방부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최근 사단급 무인 정찰기가 조용히 실전 배치된 것과 달리 작년 초 각 언론에선 첨단 무인 정찰기가 전방 사단에 배치된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사단급 무인기가 도입되면 휴전선 이북 북한군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정찰·감시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았다. 사단급 무인기는 한 번 이륙하면 5시간 비행이 가능해 4대씩 한조로 묶어 운용하면 10~15㎞ 범위를 24시간 내내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군은 총 32세트를 도입해 전방 사단에 모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육군 전방 14개 사단과 해병대 2개 사단에 총 16세트를 배치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그렇더라도 무인기 16조가 15㎞씩 나누면 240㎞에 걸쳐 감시망을 펼칠 수 있다. 휴전선 155마일(248㎞) 전체를 커버하며 북 병력과 장사정포의 움직임을 24시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남북 군사 합의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10~15㎞ 이내에서 비행할 수 없게 됐다. 사단급 무인기 탐지 거리가 5~7㎞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휴전선 이북 정찰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군의 장사정포와 전차 같은 이동 표적 정보를 한국군 포병에 전송해 유사시 정밀 타격한다는 전술도 제한을 받게 됐다.
 

 

최근 도입된 1호 사단급 무인기는 육군정보학교에 배치됐다. 내년까지 추가 도입될 15세트는 전방 사단에 배치할 계획이지만 교육·훈련용으로 쓸 수밖에 없다. 군에선 "전시(戰時)에 활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적진의 이상 징후를 사전 감지해서 대응하기 위한 정찰의 기본 목표와는 동떨어진 주장일 뿐이다.

남북은 이번 군사 합의에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상호 적대 행위 금지 차원에서 포함했다. 하지만 군사적 신뢰 구축을 원한다면 서로 병력 배치·이동을 감출 이유가 없다. 서울 시내에 CCTV가 곳곳을 비추고 있지만, 자기 동선을 감출 이유가 없는 일반인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CCTV를 겁내는 사람은 잠재적인 범죄자뿐이다. 비행금지구역 확대는 북측이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군 당국은 남북 양쪽 모두에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된다며 마치 상호 조치인 것처럼 설명한다. 하지만 북은 정찰 비행을 할 변변한 장비가 없다.

군도 무인기 정찰 능력이 제한된다는 점은 인정한다. 대신 "대체 장비를 조기 전력화하고 연합 감시 자산을 활용해 감시 공백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차세대 군단급 무인기 개발을 앞당기고 '새매' '금강' 등 공군 유인 정찰기, 미군 정찰기와 군사 위성 등을 통해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육군은 이미 사단급보다 성능이 한 차원 높은 군단급 무인기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군단급 무인기도 탐지 거리가 10~20㎞에 불과하다. 또 판독 가능한 수준의 고화질 탐지 거리는 이보다 짧아 이번 군사 합의로 능력에 제한을 받게 됐다.
 
공군 유인정찰기 그래픽

새매·금강 등 공군의 유인 정찰기는 탐지 거리가 수백㎞에 달한다. 그런데 유인 정찰기도 군사분계선에서 20~40㎞까지 비행이 금지돼 그보다 후방에서 고도를 높여 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정찰기에 장착된 광학 장비가 구름에 가리면 촬영이 불가능하고 화질이 흐릿해 판독 효과가 떨어진다. 최근 공군은 국회에 "비행금지구역 확대로 유인 정찰기의 능력이 20% 정도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정찰 자산도 몇 시간에 한 번씩 정지 화면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다. 24시간 실시간으로 전역을 촘촘히 들여다보는 무인기와는 감시 효과에서 비교가 안 된다. 한 예비역 장성은 "서울 골목길마다 촘촘히 설치된 CCTV를 철거하고 남산에 고성능 망원경 몇 대를 설치해 전체 골목을 감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라고 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공군 유인 정찰기를 더 도입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금강은 대당 400억원, 백두는 550억원, F-16은 260억원, 고고도 무인 정찰기인 글로벌호크는 2400억원이다. 총 3600억원이 투입되는 사단급 무인기 역할을 대신하려면 수조원대의 정찰 전력 증강이 필요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군이 비행금지구역 확대를 수용한 것은 북한군이 전방에서 도발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전제로 정찰·감시 능력을 스스로 제한한 측면이 크다. 한 예비역 육군 대장은 "우리 군의 정찰 능력을 제한할 정도로 지금 북한군에 대한 신뢰가 쌓였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사단급 무인기 3600억 들여 도입하는데… 교육·훈련용으로만 쓸 판
무인기 정찰 공백 메우려면 美 전략자산 제때 지원 받아야

한국군은 걸프전 때 미군의 무인 정찰기의 활약상이 알려진 이후 1990년대 중반부터 무인기 도입에 나섰다.

현재 육군에는 군단급 무인기 '송골매' 5개 세트(총 30여대)가 배치돼 있다. 송골매 도입에는 1600억원이 들었다. 이스라엘제 '서처'(대당 12억원)도 10여대 운용 중이다. 대대급 정찰기도 400여대가 도입돼 있다. 사단급 무인기도 3600억원을 투입해 내년까지 총 16세트 도입된다. 2016년 중고도 무인기 '헤론' 2대(대당 29억원)를 도입한 데 이어 고고도 무인 정찰기인 미국의 '글로벌 호크'도 내년까지 4대(9515억원)가 배치된다.

한국군 무인기 공백을 메워 줄 미군 정찰 자산 가운데 군사분계선 인근 지역을 감시하는 정찰기는 RC-7B다. 오산 미군 기지에 배치된 U-2S 정찰기는 DMZ에서 200㎞ 떨어진 북한 후방 지역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평양을 비롯해 북한 후방 지역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전자·통신 감청 정보도 수집해 북 정권 수뇌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정찰기다. 주일 미군 기지의 RC-1 35 전략 정찰기는 발사된 미사일의 궤적 정보 등을 모은다. KH12·13 정찰 위성도 북 후방 지역 핵실험장, 미사일 발사장 등을 감시한다.

문제는 미군 전략 정찰 자산을 우리 것처럼 원하는 대로 지원받을 수 있느냐다. 특히 북한과 가장 가까이 있는 점 때문에 북 미사일 발사 뒤의 초기 비행 정보는 미국과 일본도 한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진 점도 변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28/2018112803731.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