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미사일 능력 강화하는데 한강·NLL로 비행금지구역 확대
서해안 공백, 전방 방어력 약화, 도발 능력 강화 등 '三重 위협'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신원식 前 합참 작전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가 많은 국민의 우려에도 지난달 23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처 이달 1일부터 시행됐다. 최근 정황으로 볼 때 북한은 핵 포기 의사가 전혀 없음은 물론 삭간몰 스커드 기지와 신형 첨단 무기 실험에서 드러났듯이 오히려 핵 능력 향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현재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을 동·서해 북방한계선(NLL)과 한강 하구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북한 배려'가 '대한민국 안보'보다 더 중요한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군사 분야 합의서 발표 후 심각한 안보 공백을 초래한다는 각종 우려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임기응변식 해명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서해 평화수역 기준을 북방한계선이라고 했다가 우리가 35㎞를 더 양보한 사실이 드러나자, 실무자 실수라고 얼버무리다가 "추석 밥상머리에서 NLL 양보했다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실언으로 속내를 들켰다. 비판이 일자 북한의 해안선이 더 길고 해안포가 많아 북한이 더 많이 양보했다고 둘러댔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북한의 낡은 해안포가 아니라 황해도에 배치된 장사정포를 포함한 북한 4군단임을 지적하자, 적대 행위 중지 구역에 황해도도 포함된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합의서에도 없는 내용을 북한이 정말 약속했고 지킬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부는 또 훈련은 안 하기로 했지만 북한의 도발 감시를 위한 초계(哨戒) 작전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북방한계선과 한강 하구에 대한 비행금지구역이 설정되면 초계 작전의 핵심인 항공 정찰이 불가능하게 된다. 수시로 말을 바꾸는 정부의 배짱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언론과 국민의 관용과 망각도 놀라울 뿐이다.

이제 수도권 서쪽에 유사시 아군이 대처하기 힘든 심각한 공백이 생겼다. 북방한계선 일대 군사력 균형은 일방적으로 북한에 유리해지고 서북 5도서는 북한의 기습 강점 위협에 상시 시달리게 됐다. 북방한계선에서 북한의 도발을 감시하고 저지하지 못하면 수도권이 도발에 바로 노출된다.

더구나 한강과 임진강 하구까지 공동 이용 수역이 되니, 북한 특수부대가 언제든 한강을 이용해 일거에 서울 시내로 들어오거나 평택 수로를 이용해 평택 미군 기지가 있는 경기 남부까지 위협할 수 있게 됐다. 잠수함으로 기뢰를 부설해 인천항만을 봉쇄하고, 기습 도발로 인천공항을 폐쇄할 수도 있다.

북방한계선과 서북 도서는 우리 해병대와 해·공군 첨단 전력 덕분에 북한에 쐐기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아군보다 병력이 수십 배 많은 북한 4군단이 황해도에 발이 묶여 있었다. 이제 북한 4군단은 일부만 남겨놓고 많은 부대가 서울과 가장 가까운 서부 전선으로 이동할 행동의 자유를 얻었다.

결국 수도권은 ▲서해안 공백 ▲비행금지구역으로 정밀 감시·타격 능력 제한, GP·장애물 철거, 급격한 부대·병력 감축 등으로 아군 전방 방어력 약화 ▲신형 300㎜ 방사포 증강 등으로 북한군 전방 전투력 강화 같은 삼중(三重) 위협에 상시 노출되게 됐다.

지금까지 남북 간 모든 무력 충돌은 북한의 계획적 도발 때문에 일어났다. 북한이 정전 교전 규칙과 비무장지대·북방한계선을 준수했더라면 무력 충돌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도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북한은 한국군을 24시간 감시하거나 도발 대응 태세를 굳이 갖출 필요가 없다.

반면 우리는 이를 철저히 갖추지 않으면 국민 생명은 물론 장병들 목숨도 지킬 수 없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속성이 변했다는 증거가 전무한데, 우리의 자위권적 방어 조치를 허문 군사 분야 합의서는 '국가적 자살'로 가는 최악의 실책이다.

우리 국민은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해도, 생명을 지킬 방어 장치가 무력화돼도 참 태연하다. '낙천주의는 공포로부터 비롯된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肖像)'에 나오는 말이다. 무섭다고 '설마'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가짜 낙천주의다. 악(惡)으로 똘똘 뭉친 독재자의 말을 믿는 것은 파멸을 부르는 가짜 평화요, 집단 최면일 뿐이다.

국민은 공포에서 벗어나 불편한 진실과 맞서는 용기와 지성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안보 태세를 심각하게 허문 군사 분야 합의서를 폐기하거나 끝장 토론을 통해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북한과 한 약속보다 훨씬 중요한 게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 생명·재산을 지키는 대통령과 정부의 헌법적 의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8/20181118017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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