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복 할아버지와 단체사진, 사진작가 현효제씨가 제안
제2연평해전 유족 김한나씨 등 페북 보고 시민들 자발적 참여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11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사진 스튜디오. 육군 하사복을 입은 유영복(88)씨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모였지만, 주위에 선 열다섯 명 모두 이날 오전 처음 만났다. 초등학생, 현역 군인, 연평해전 때 남편을 잃은 여성까지 유씨 가족을 자처한 사람들은 사진가 요청에 따라 자세를 바꿨다.

유씨는 1953년 육군 5사단 소총수로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됐다. 당시 계급은 일병이었다. 이후 47년을 북한에서 살았고 그중 30여 년을 함경남도 검덕·동남 광산에 보내져 광부나 측량사로 일했다. 2000년 중국으로 탈출한 뒤 한국에 와 탈북 국군포로 단체인 '귀환국군용사회'를 만들고, 회장을 지냈다.
 
11일 서울 역삼동의 한 사진관에서 사진가 현효제(왼쪽 아래)씨가 탈북 국군 포로인 유영복(88·가운데 전투복 입은 이)씨와 현역·퇴역 군인, 제2연평해전 유가족들을 한데 모아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11일 서울 역삼동의 한 사진관에서 사진가 현효제(왼쪽 아래)씨가 탈북 국군 포로인 유영복(88·가운데 전투복 입은 이)씨와 현역·퇴역 군인, 제2연평해전 유가족들을 한데 모아 ‘가족사진’을 찍고 있다. /이태경 기자

이날 촬영은 사진작가 현효제(39)씨가 제안했다. 2016년부터 생존한 6·25 참전자들의 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18국 700여 명을 찍었다. 한씨는 "탈북한 참전 용사들 이야기를 듣고 '가족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응원을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유영복 할아버지와 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는 현씨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현역 육군 대위인 정동호(33)씨는 "병사들에게 정훈 교육을 할 때 국군 포로의 노고에 대해 가르치는데, 이렇게 직접 뵈니 감회가 새롭다"며 "나라를 지켜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예비역 육군 대위 안종민(44)씨는 아홉 살 난 딸과 함께 스튜디오를 찾았다. 안씨는 "아이에게 이보다 값진 교육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전사한 한상국 상사 아내 김한나(44)씨도 참가했다. 김씨는 "국가를 위해 헌신했는데 사람들이 평소 잊고 있는 애국자라면 모두 내 가족 같다"고 했다. 유씨는 참가자들에게 "조국에 그다지 기여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가족같이 환대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유씨는 사진 촬영에 앞서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북한에 있는 국군 포로들이 북한에서 적대(敵對) 계층으로 천대받는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한국에서 전향자 취급을 받는 건 참을 수 없더라"고 했다. 북한은 1953년 포로 교환 이후, 북한에 남은 국군 포로는 모두 북으로 전향했다는 입장인데 한국에서 이런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유씨는 "내가 광산에서 일하며 본 비전향 국군 포로만 1000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유씨에 따르면 탈북한 국군 포로는 80명이지만 현재 28명이 생존해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12/20181112002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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