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에게 호감 갖고 '강철대오' 같은 연대 의식 지닌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 국민의 장래에 도움되어야
 

황대진 정치부 차장
황대진 정치부 차장

얼마 전 전대협 출신 여권 인사를 만났다. 김정은이 진짜 핵을 없앨지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김정은은 자신과 북한이 살려면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겸손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했다. 거짓말할 사람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형과 고모부 등 수백명을 죽인 사람을 어떻게 믿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건 내부 권력 투쟁에서 벌어진 일이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북한 내 인권과 민주주의는 남북관계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낙하산'을 왜 그렇게 많이 내려 보내느냐고도 물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 선거에 도움을 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비판은 감수하겠다"고 했다. "같은 낙하산이라도 우리 쪽이 능력과 도덕성 면에서 더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북한을 대하는 태도다. 김정은에게 근거를 알 수 없는 호감을 갖고 있다. 또 그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전대협 1기 의장이었던 이인영 의원은 지난 29일 국정감사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미·북 협상 타개를 위한 '절충안'을 내겠다며 북한 핵의 50%만 공개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1988년 남북청년학생회담을 위해 남측 대표를 북으로 밀항시키는 이른바 '돼지몰이 작전'을 기획했던 2기 의장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요즘 남북철도 연결에 몰두하고 있다.

3기 의장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남북정상회담이행추진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최근 선글라스 끼고 전방(前方)에 가 화제를 낳았다. 4기 의장 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북한이 거부감을 보인다'는 이유로 6·25 전시(戰時) '납북자'를 '실종자'로 바꿔 부르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북이 핵을 폐기할 것으로 믿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강한 연대의식이다. '구국(救國)의 강철대오'라는 기치처럼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유대가 공고하다. 이인영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면 1기 부의장 우상호 의원은 불출마하고, 우 의원이 서울시장에 나가면 이 의원은 하고 싶어도 참는 식이다. 전대협 출신들은 의장뿐 아니라 간부급까지 '전대협 동우회'로 묶여 있다.

상당수가 현 정부 요직에 포진했다. 임 실장을 비롯해 한병도 정무수석, 신동호 연설비서관, 백원우 민정비서관, 김영배 정책조정비서관, 김종천 의전비서관 등 청와대만 따지기도 벅차다. 민주당은 올 7월 전국 지역위원회를 일제히 정비했지만 청와대 참모들 지역구는 비워뒀다. 특혜였다. 그중 한 곳에 지역위원장을 지망했던 인사는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이 '망국의 강철 밥통'으로 변질됐다"고 했다.

전대협 동우회는 1994년 1~6기(期) 활동을 정리한 책 '불패의 신화'를 냈다. 군사정권과의 투쟁을 기록한 일종의 '전승록(戰勝錄)'이다. 우상호 의원이 주도한 편집위원회는 책 후기에 '기성세대에 실망하면서 우리는 절대 그러지 말자고 결의했던 시절을 떠올려본다'고 썼다. 이인영·우상호 두 사람은 이제 4선·3선의 여당 중진이 됐다. 오 사장은 거대 공기업을 이끌고 임 실장은 '2인자' 소리를 듣는다.

반면 동시대를 살며 이들의 성공에 밑바닥을 깔아줬던 수많은 '학우 대중'들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있다. 전대협 출신 정치인이 이들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은 김정은이나 새 낙하산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 속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전대협의 '불패 신화'가 국가와 국민의 장래에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해서야 되겠는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0/20181030043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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