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회담 실무를 담당하는 비건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그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다. 미국의 북핵 담당자가 외교·안보 책임자인 정의용 안보실장보다 임 실장을 먼저 찾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이 극히 이례적인 요청을 한 것은 대북 정책을 주도하는 것이 안보실장이 아닌 임 실장이라고 보고 그에게 직접 남북 관계 속도 조절을 주문하고 반응을 듣기 위해서라고 한다. 미국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외교 라인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이 북한 비핵화와 별개로 진전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한국이 이를 무시하자 임 실장을 직접 만나기에 이른 것이다. 비건이 지난주 워싱턴에서 한·미 6자회담 수석 대표 협의를 하고 1주일 만에 서울로 온 것은 미국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 보여준다.

미국은 국제사회가 제재 수위를 끌어올렸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고 본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때까지는 제재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반면 우리 정부는 미국이 철도 연결 사업 등 남북경협에 잇따라 제동을 걸자 유럽에 가서 "대북 제재를 완화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 최근 미국에서 "미 정부 관계자들 상당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해 우려하거나 심지어 분노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통일부 장관은 공개 석상에서 "미국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북한은 지금 노골적으로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비핵화 협상은 지연시키고 있다. 미측이 지지난주 "열흘 내에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던 고위급 회담은 북한의 거부로 아직 성사되지 않고있다 . 북한은 핵 폐기의 실질적 로드맵을 논의할 실무급 협상에는 아예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남북 경협에 조급증을 보이면 미국의 의심을 사게 되고 이 의심이 쌓이면 지금으로선 생각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의 은행이나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검토하는 것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장담할 수 없게 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0/2018103004310.html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