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비서실장 우선 면담
 

방한(訪韓) 중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29일 청와대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났다. 비건 대표는 지난달 방한 때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었다.

비건 대표가 청와대의 외교·안보 책임자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대신 임 실장을 만난 이유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측 요청 때문"이라고 밝혔다. 임 실장을 먼저 찾은 비건 대표는 30일 정 실장을 만날 계획이다. 외교 소식통은 "최근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경협, 대북 제재 완화 등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표출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과 진의를 파악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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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오른쪽) 대통령 비서실장이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왼쪽)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청와대는 미국 측의 요청을 이유로 들었지만 북핵 실무를 담당하는 비건 대표가 정 실장에 앞서 임 실장을 먼저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미국은 '남북 관계가 잘되면 비핵화도 잘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래서 남북 관계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임 실장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라고 했다. 면담에는 미국 측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와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이 배석했다.

청와대는 면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그리고 2차 북·미 회담 진행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가 오갔다"고 밝혔다. 청와대 측은 "임 실장은 비건 대표에게 '북·미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고, 비건 대표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비건 대표가 요청했다는 '한국 정부 지원'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면담에서는 최근 한·미 간 논란이 되고 있는 남북 사업과 대북 제재 문제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대표는 임 실장에게 남북 철도 연결 및 군사 합의 등이 북한 비핵화를 추동한다는 청와대 논리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실장은 비건 대표에게 "과거 남북 관계가 좋을 때 비핵화도 진전이 있었다"며 남북 관계와 비핵화의 '선순환'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비건 대표는 제재를 통한 비핵화 원칙과 함께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만난 비건 대표는 북한 지역까지 인쇄된 한반도 지도를 손에 들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비건이 들고 온 한반도 지도 -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만난 비건 대표는 북한 지역까지 인쇄된 한반도 지도를 손에 들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고운호 기자
비건 대표는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만났다. 30일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만날 예정이다. 비건 대표는 강 장관과의 면담에서 "우리는 한반도에서 지난 70년간의 전쟁과 적대의 종식과 그것을 위한 기본적 요건인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FFVD)'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고 했다.

비건 대표와는 별도로 미 하원의 맥 손베리 군사위원장도 이날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그리고 외교부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을 만났다. 손베리 위원장은 전날엔 정경두 국방장관과 면담했다. 손베리 위원장은 남북 경제 협력 및 군사 합의, 그리고 대북 제재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와 의회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서울을 방문해 청와대와 외교부 핵심 인사들을 연쇄 접촉한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FFVD 원칙과 한·미 간 협의·소통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인사들이 한국 정부의 진의를 파악하면서 남북문 제의 '과속'은 안된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편, 강 장관은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복원 계획에 대해 '한국이 예외국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국의 입장에 유념하면서 앞으로도 긴밀히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30/20181030002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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