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미화한 리영희 "내 제자들 남측 사회 쥐고 흔든다"더니 바로 그렇게 된 현실
北과 사랑에 눈이 멀면 리영희가 말했던 대로 북 核 보유 돕게 될 것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김정은이 편지에서 자신에 대한 찬사를 계속해주자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 TV가 트럼프에게 "주민을 억압하고 굶주리게 하고 이복형을 암살하는 사람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나도 안다. 나는 애가 아니다"고 했다. "나는 김정은을 정말 믿는다. 하지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지만 지금 김정은이 필요하며 그에게서 무언가 자랑할 만한 것을 얻어낼 수 있다면 사랑 고백이라도 왜 못하겠느냐는 생각일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은 거래하는 중이지 사랑 때문에 눈에 콩깍지가 씐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협상을 하는지, 사랑으로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5년 북의 지뢰 도발 때 우리 군이 북 지역으로 155㎜ 자주포 29발을 동시 사격하자 북은 협상을 먼저 제안해 왔다. 북측 황병서는 우리 측 대표였던 김관진 안보실장을 화장실까지 따라와 초조함을 드러냈다. 그 협상에서 북은 휴전 이후 최초로 자신들의 도발을 사실상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것이 협상이다.

2006년 북이 첫 핵실험을 감행해 민족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워졌을 때 개성공단에서 남북 행사가 열렸다.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막 시작된 그 엄중한 시기에 민주당 대표단이 북측과 점심을 먹다가 일어나 춤을 췄다. 이것은 사랑에 눈이 먼 것이다. 협상인지, 사랑인지는 저자세로 굽실거리는지를 보면 된다. 협상이라면 상대에게 굽실거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북과 사랑에 빠진 정권의 관료들은 북 앞에서 저자세로 나가게 된다. 통일부 장관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연인에 대해 특별 기준을 적용한다. 다른 사람은 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연인이 하면 '불가피한 것' '특수한 사정' '일리가 있다'고 한다. 콩깍지가 씐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이 핵개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 그러다 북이 핵개발을 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의 핵개발에도 일리가 있다고 한 것이 그 예다. 한국에서 누가 세습 왕조를 세우려 하면 목숨 바쳐 싸울 사람들이 북한의 김씨 왕조에 대해선 '가족주의적 나라'라고 한다. 한국 내 인권엔 편집증을 보이는 사람들이 북한의 인권 말살에 대해선 '특수한 사정'이라고 한다.

눈에 콩깍지가 씌면 미운 것도 곱게 보인다. 북한은 대표적으로 실패한 국가다. 평양을 벗어나면 변변한 도로 하나, 철도 하나도 없다. 아직도 먹는 문제조차 해결이 안 됐다. 그런데 전시 무대로 꾸며놓은 평양만 보고 "놀랍다"고 감탄한다. 이들도 북한 현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머리는 아는데 가슴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좋은 것만 보인다. 북한 IT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고 한 전직 장관도 나왔다. 정신병이 아니라 사랑이다.

이들의 북한 사랑은 역사가 오래다. 이승만·박정희와 싸우다 보니 이승만·박정희의 적(敵)이 마음속, 이념 속 동지가 된 것이 그 시초가 아닐까 한다. 이들은 별 예외 없이 리영희의 제자들이다. 리영희는 중국 문화혁명을 미화한 사람이지만 북한 사랑의 원조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성(姓)조차 북한식 '리'를 고집했다. 그는 북핵 위기가 시작된 1992년 '북이 핵을 포기한다고 미국의 대북 정책이 수정되지 않는다. 일단 국제 사찰에 개방되면 그것(핵)을 재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빨 빠진 새끼 호랑이가 되는 셈'이라고 북에 충고했다. 북에 절대 핵을 포기하지 말고 국제 사찰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리영희는 대한민국의 기적적 성취는 철저히 무시하고 북에 대해선 '새 나라 혁명과 열기가 충천한 사회' '북한 주민이 강냉이 죽만 먹고 영양실조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남쪽 권력이 주입한 고정관념'이라고 했다. 그때는 이미 북 주민 수십만명이 굶어 죽고 있을 때였다. 리씨의 한국·미국 저주, 북한 사랑, 중국 공산당 미화는 1970년대 운동권의 성경처럼 됐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대부분이 이 세례를 받았다. 이 세례가 1980년대 주체사상파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2007년 리영희를 만난 북한 내각참사가 "리 선생이 민족적 선의에서 쓴 글을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자 리씨는 "(내가) 20~30년 길러 낸 후배와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 리영희가 말한 그대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7/20181017038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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