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15일 판문점 우리 측 구역인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통일부 기자단을 대표해 취재할 예정이던 탈북민 출신 김명성 본지 기자의 취재를 불허했다. 전날 오후 갑자기 취재 기자 교체를 요구하더니 이날 아침 취재단 4명에서 김 기자만 제외한다고 일방 통보했다. '북측 요구는 없었다'고 했다. 북한이 과거 입맛에 맞지 않는 우리 측 취재진의 방북을 불허한 경우는 있었지만,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남북 회담에 우리 정부가 먼저 특정 기자를 찍어 배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통일부 기자단은 이날 '탈북민 기자 취재 제한은 부당하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통일부 장관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통일부 출입 언론사 50곳 중 49곳이 동참했다.

통일부는 불허 이유를 '한정된 공간에서 회담이 열리는데 김 기자가 활발한 (취재) 활동으로 (북한에) 알려졌으니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했다. 김 기자는 지난 2월 김여정·김영남 일행이 방한(訪韓)했을 때도 통일부 기자단을 대표해 북 고위급을 근접 취재했다. 판문점 평화의집보다 더 한정된 강릉 호텔에서 김여정과 불과 1~2m 떨어져 취재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평화의집은 판문점 통일각이나 평양처럼 탈북 기자의 신변이 위태로울 수 있는 북측 영역도 아니다. 무엇이 '특수한 상황'인가. 이러니 탈북민들이 "천안함 폭침의 주역인 김영철은 대한민국을 휘젓고 다니게 하더니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민의 권리는 왜 박탈하느냐"고 울분을 토하는 것이다.

정부는 남북 대화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북이 껄끄러워 할 일은 알아서 삼간다. 북 눈치 살피는 정도가 거의 '심기 경호' 수준이다. 올 초 현송월이 왔을 때는 '(현송월이) 불편해하신다'며 취재를 통제하더니 급기야 탈북 기자의 취재까지 불허했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언론 자유와 직업 수행 자유의 기본 원칙을 허물며 북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북에 나쁜 메시지를 주고 인권 유린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 앞으로 북은 자기편 남측 언론 매체와 기자만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 정부는 그 요구도 그대로 들어줄 것이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올 초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위해 방한할 때부터 북한 최고위급 대표들과 면담이 예견돼 있었다. 그런데도 북한에 억류됐다가 사망한 미국 청년 오토 웜비어의 부친과 동행했고 국내 탈북민들과 면담했다. 그래서 당시 펜스 부통령과 북측 대표들의 만남은 무산 됐지만 결국은 북이 먼저 미·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나섰다. 북은 자기 필요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 자기 비위를 맞춰 준다고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 북과 같은 체제는 상대가 대화 분위기를 위해 선의(善意)를 보여주면 그걸 상대의 약세로 보고 한없이 양보를 요구하며 밀어붙일 뿐이다. 남북 관계가 건강하게 발전해 나가길 원한다면 그럴수록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15/20181015030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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