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中 개혁 개방 격찬하더니 핵 실험으로 북·중 관계 급랭
김정은의 파격 행보도 '닮은 꼴'… 非核化 진심인지는 불분명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1994년 집권 이후 6년간 중국을 쌀쌀맞게 대하던 김정일이 최고 권력자 자격으로 중국을 처음 방문한 건 2000년5월 말이었다. 장쩌민 주석을 만난 그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위대한 성과를 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옳았으며, 조선노동당과 정부는 이 정책을 지지한다"고 했다.

1983년 후계자 신분으로 처음 중국을 찾아 상하이, 선전 등을 둘러본 김정일은 평양으로 돌아가 "중국 공산당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포기한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이에 덩샤오핑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랬던 김정일이 최고 권력자가 돼 중국을 찾은 자리에서 개혁·개방을 극찬하고 나섰으니 중국으로서는 반색할 일이었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01년1월 김정일은 다시 중국을 찾아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GM, 화훙NEC, 상하이증권거래소 등을 둘러보고는 "상하이가 천지개벽했다"고 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자생적으로 생겨난 북한 내 장마당을 묵인하는 7·1 경제 관리 개선 조치를 내놓았다.

처음 김정일의 의도를 반신반의했던 중국에서 북한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고조됐다. 북한의 경제난 극복을 위한 지원도 본격화했다. 2003년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2005년 후진타오 주석이 각각 평양을 찾았고, 5000만달러를 들여 평양 인근에 대안 친선 유리 공장을 지어줬다. 또 2003년부터 2009년까지 1억달러 가까이 투자해 북한과 140여 합영 회사도 차렸다.

김정일 개혁·개방쇼의 정점은 2006년1월 네 번째 방중이었다. 8박 9일 동안 후베이성 우한, 광둥성 선전과 주하이 등을 찾아 공업과 농업, 과학기술 분야에 걸쳐 10여 기관과 기업을 방문했다. 그의 일정은 덩샤오핑이 1992년 보수파의 반대를 뚫고 개혁·개방을 밀어붙이기 위해 나섰던 남순강화(南巡講話) 때와 거의 똑같았다. 베이징으로 돌아와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서는 "개혁·개방이 중국 국력을 크게 끌어올렸고 놀라운 발전을 이뤄냈다"고 했다. 김정일이 중국 모델을 따라 경제 개혁에 나서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해 10월 9일 북한은 1차 핵실험을 단행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개혁·개방을 고대해온 중국에 찬물을 끼얹었다. 핵실험 사실은 20분 전에 통보했다. 분노한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감히(悍然)"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북한을 비판했다. 그만큼 배신감이 컸고 중국에서 대북 정책 전환론도 제기됐다.

10년도 더 지난 당시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올해 김정은의 파격적 행보가 당시 김정일과 흡사한 점이 많아서이다.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한편으로 베트남식 개혁·개방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국제사회에 애드벌룬을 띄우는 모습이 그때 김정일을 꼭 닮았다.

이미 김정일을 겪어본 중국 안팎의 북한 전문가들 가운데 김정은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가 많다. 공산국가의 개혁·개방은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다.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개방 물결 속에 줄줄이 붕괴했고, 중국도 천안문 사태라는 비극을 겪었다. 김정은이 이런 위험을 각오하고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국제사회를 향해 개혁 제스처를 취하다 살만해지면 이전 체제로 돌아가는 관성을 되 풀이해 왔다. 개성공단 같은 경제특구도 주민 생활 공간과 철저히 격리된 곳에 설치해 정치적 영향을 차단해왔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보다 파격적이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이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위한 것인지, 국제사회의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 확보를 위한 쇼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른 외교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갖지 말아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07/20181007022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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