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19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지상·해상·공중에서 일체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남북은 11월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고 동·서해상에선 남북으로 80~135㎞ 해역을 완충지역으로 설정해 포병·함포 사격과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 또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10~40㎞ 이내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 구역에서 공중정찰 활동을 금지하기로 했다. 비무장지대 내 남북 감시초소(GP)를 11곳씩 22곳을 시범 철수하고 공동경비구역(JSA)도 비무장화하기로 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군사 긴장 완화 조치는 우리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조치로 안보가 도리어 불안해진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군사 합의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을 억지해야 하는 우리 군의 능력이 제한되는 부분이 있어 상당한 우려가 든다.

남북은 이번 합의에서 군사분계선 기준 항공기의 경우 서부 지역 남북 각 20㎞, 동부 지역 40㎞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했다. 우리 군은 그동안 군사분계선에서 9㎞를 비행금지 구역으로 운용했는데 대폭 확대한 것이다. 북한은 평양~원산선 남쪽에 100만이 넘는 병력과 화력의 대부분을 배치해 놓고 있다. 군사분계선 근처에는 340여 문의 장사정포가 우리 수도권을 겨냥하고 있다. 우리 군이 운용하는 중·대형 무인 정찰기와 RF-16(새매) 정찰기 등은 북한군의 도발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번 비행금지구역 확대로 안보의 눈에 해당하는 정찰·감시 능력은 약화·제한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군이 비행금지구역 확대를 적대행위 중지 차원에서 합의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정찰은 상대의 도발 움직임을 파악하는 방어용 작전이다. 지금 우리가 북을 선제공격하기 위해 정찰한다면 궤변일 뿐이다. 정찰 자산은 그나마 우리가 핵을 가진 북한군보다 우위에 있는 몇 안 되는 전력이다. 군비 통제의 비례성으로 보나 대북 억지력 차원에서 우리의 일방적 양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북은 비행금지구역 확대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북은 정찰 활동 전체의 중지를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자칫하면 우리 군의 눈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남북은 군사공동위원회에서 대규모 군사훈련과 군사력 증강 문제도 논의하기로 했다. 한·미 연합훈련과 국군의 전력 강화까지 족쇄로 묶일 수 있다. 북핵은 그대로인데 북핵 미사일을 막을 3축 체계 등 우리 손발 묶을 논의만 이렇게 활발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정부가 최근 확정한 국방계획의 전력 증강 조치들은 또 어떻게 되나. 남북이 봉쇄 차단 및 항행 방해 문제를 다루기로 한 것도 결국 미국의 대북 해상 봉쇄를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동·서해 상당 구역에서 일체의 훈련을 못하게 된 것도 북한에 인접해 있는 백령도·연평도 등 서해 5도에 대한 안보 불안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수도권 왼쪽 측면 해역 전체가 훈련 중지 지역에 포함된 것이 수도권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숙 고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설마' 한반도에 전쟁이 나겠느냐는 전제 아래 이뤄지는 것이라면 안보 모험이다. 북한이라는 상대의 선의(善意)를 믿고 하는 일이라면 도박이다.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한 미군과는 어떤 사전 논의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얼마 안 있어 바뀌는 국방장관이 북한과 이렇게 중요한 합의를 대량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19/20180919040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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